여행

큐슈초입여행기

세심 엄용식 2011. 2. 2. 14:49

설날(2011. 2. 3) 전에 회사가 휴무하는 날이 몇 일 있어 가까운 일본 온천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항공편으로 다녀오는 것이 편하고 좋긴 하지만 부관(釜關)페리를 타보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 될 것 같아 1.29일에 출발하는 패키지 여행을 택하였다. 헌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남큐슈 미야자키현 신모에다케화산이 폭발한다고 해서 여행이 취소되는 것 아닌 지 물어 보았더니 물어보는 사람이 여럿 있다고 하더니 그 화산재 진행방향이 남쪽이라며 안심해도 된다는 거였다.

 

 설날 바로 밑이라 값도 싼 여행사가 하는 KTX편 예약도 안된단다. 할 수 없이 평소 수원-신탄진간 출퇴근용으로 쓰고 있는 철도회원권을 이용해 간신히 하루 4편밖에 없는 수원-부산 KTX왕복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내려갈 때는 맞는 시간이 없어 10:48분 걸 타고 갔는 데,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모이는 시간이 17시반이라 점심을 자갈치시장에서 즐기기로 하고 KTX에 올랐다. 나중에 부산역에서 천천이 살펴 보니 서울올라가는 게 10분 간격으로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새마을호가 점차 줄고 있는 추세인데, 서민의 눈에는 KTX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요금이 크게 올랐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어쨋든 부산까지 2~3시간이고, 중국 등에서 시속 250~350Km를 자랑하는 걸 보면 비행기와의 경쟁이 본격화되는 것 같고 요금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림1> 자갈치시장에서 본 영도섬 바다                    <그림2> 자갈치시장에서 본 영도섬을 잇는 연육대교

 

 부산역에 도착하고 보니 점심때이고 시간도 많이 남아 자갈치시장에 택시로 가기로 하였는 데, 운전기사양반얘기가 옛날자갈치시장이고 지금은 부산사람들은 비싸 멀리 기장쪽 등 싼 곳으로 많이 간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자갈치명성이라 가보았는 데, 7층에 새로 전망대도 들어섰고 영도섬을 바라보며 횟집에서 오랫만에 탕까지 먹으니 그것만 해도 아내와 함께 부산바람쐬는 일인 데, 우리는 오는 길에 다시 수산시장 해물장을 보기로 하고 내친 김에 국제시장을 둘러 쭉 돌아 다녔다. 호떡집에 불이 났는 지 사람들이 줄지어 호떡을 사먹길래 우리도 무작정 줄서라는 말에 서서 기다리다 하나 얻어먹어보니 그 안에 해바라기씨도 넣고 고물이 좀 특이하였다. 인기만점이었는 데,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중앙역이다. 마침 행사중이라 피에로가 애들과 노는 것도 보고 시간이 되어 슬슬 우리는 일어섰다.

 

  

<그림3> 국제시장 언덕위에 불티나는 호떡집             <그림4> 국제시장 바닥의 이만희 황정순 스타손도장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이드인 박지형씨로부터 표를 받고도 시간이 남는다.  사진도 찍고 집사람이 휴대폰을 안가져오고 전화받을 일이 있어 임대폰을 빌리기로 하였다. 하루 2000원씩인 데, 내게 자동로밍이 되긴 하나 전화올 데도 없고 그 놈의 문자스펨이 많이 날라올 거, 그냥 집사람전화를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건 꺼두었다. 터미널에서 부터는 간간이 일본말도 들려온다. 저녁 7시쯤 배에 올라 짐을 풀으려 캐빈에 들어가 보니 그럭저럭 쓸만 하다. TV도 나오고 식당도 있고 GPS로 항해위치도 나오니 비행기와 비슷하다.

 

 

 

<그림5> 성희호 안 1층에 전시된 페리모델                <그림6> 성희호 갑판위에서 본 부산항 야경

 

 흔들리는 현해탄이지만 잠을 청하고 좀 잠에 빠졌나 했더니 시모노세키에 다 왔는 지 밖이 부산하고 밝아지길래 내다봤더니 항구모습이 역력하다. 입국심사하는 데 외국공항에서와 같이 한참 기다려 짜증이 났다. 귀국길에는 무척 빠르게 처리가 되던 데, 일본입국은 외국인에게는 복잡한가 보다. 거기에 일본내국인은 빨리 나가도록 입국심사대가 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더 열을 받게 된다.

 

 시모노세키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관문대교를 건너니 큐슈이다. 따듯한 남쪽나라이다 보니 대나무산밭에다 감귤밭이 보인다. 이것저것 눈은 풍물을 향하는 데, 버스간에 서서 열심히 가이드해 주는 박지형씨 설명은 귀에 꽂힌다. 일본을 망하지 않게 하는 3가지가 있다는 데, 일본을 쫒아가는 우리가 유심히 살펴보면 해먹을 게 있다는 논조였다. 국도를 타고 벳부를 향해 수직으로 내려가는 데, 중간에 슈퍼를 들러 필요한 과일과 인기상품인 지 가게 앞에 특설코너를 만들어 파는 구운 모찌떡이 있어 사먹어 보았다. 

 

 

<그림7> 시모노세키 터미널앞의 깨끗한 도로          <그림8> 벳부내려가는 길옆 휴게소의 슈퍼 과일매대 

 

 첫째는 1인산업시장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를 위한 1인식당이며, 재래시장도 다 없어져 전국에 이제는 5개 정도밖에는 안남아 있다고 한다. 식사도 우리와 달리 제대로 먹는 것보다는 때우는 식문화 형태가 많다고 한다.   이제 일본에는 전세도 거의 없고 월세가 대부분이라 역세권주변에 집있으면 2억원정도 투자에 월세 15만엥정도로 수입이 쏠쏠하다니 투자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생각해 볼 만한 정보이다.  

 

 1인 가족경우에는 그저 세븐일레븐이니 로손에 가서 해결하고 그렇게 간다고 하니 핵가족으로 가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장이 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애완동물 화장시설도 그 중에 하나라는 데, 핵가족일수록 애완동물에게 정을 주니 죽은 뒤에 화장시설도 뜰 거는 분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으로 아는 데, 문제는 누군가 치고 나가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시장이 있어 보인다는 거다. 일본관광객들이 동대문.남대문시장에 열광하는 데, 일본은 이런 게 없으니 더 신기해 보이는 가 보다.

 

 둘째는 오락성 도박시장이란다.  빠징코. 경륜.경마. 복권. 도박 등이 그런 건 데, 우리도 게임시장 등이 있는 데, 오락성 도박시장은 사행성 도박문제때문에 규제를 해서 그렇지 오락성으로 잘 관리되면 산업도 키우고 개발할 좋은 면도 많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셋째는 실버문화시장을 추천한다.  75세 이상이 1000만명, 100세 이상이 100만명이나 되는 노인천국이란다. 교회같은 종교기관에서도 필요하고 자격증을 따면 취업을 안하고 자기 부모에게 서빙만 해도 국가보조금이 나온다니 젊었을 때 자격증을 따 둘만 하다 하겠다.

 

일본인에 대해서는 보기만 동양인이지 머릿속은 서양인이라 한다.  1868년에 명치유신하고 '입구탈아(入歐脫亞)'를 외친 일본이지만 실제로는 임진왜란 전에 화승총을 도입해 화력에서 이미 서양인이었던 기마민족이다. 우리에게는 로마와 같은 기회가 올 순 없을까, 고조선과 고구려때 일본까지 통일못한 우리 선조들이 못내 아쉽다.

 

 일본이 철저한 게 또 한 가지 있는 데, 그게 음식이요, 안전이다.  먹는 것 가지고는 장난안치는 나라, 먹는 거는 무엇이든 'Maid in Japan'이 최고인 나라.  신선도가 최고인 나라라 우리나라에서는 유통기간이라고 하여 제품에 붙이지만 일본은 없다. 대신에 상미기간'(嘗味期間)'이라 하여 신선도가 최고인 기간을 적어 넣고 있는 게 보통 특이해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에 가보면 횟집이 안보인다고 한다. 그것은 첫째로 연안 12km이내의 것은 중금속오염 우려 등으로 안잡고 회를 숙성해 먹는 게 맛있다는 식습관으로 굳이 횟집을 바닷가에서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치도 홋가이도에서 잡는 게 70%, 태평양등 원양이 30% 정도가 들어와 횟집에서 먹게 되며 바다낚시로 해서 즉석회를 먹는 문화는 없다고 한다니 우리와는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안전에 대해서는 또 하나, 자동차와 햄버거가 있다.  자동차는 600cc이하 경차가 전체의 55%이상이고 90%이상이 일본제품이다. 안전제일주의와 속도준수는 여행하면서 거리를 보면 실감이 난다. 우리와는 너무 차이나는 데, 이걸 배워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도 세계적으로는 맥도널드이지만 일본에서는 모시버거이다. 안전한 것, 먹는 것 만큼은 일본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일본제일주의가 깔려 있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은 한반도의 2배 정도크기로 같은 기마민족 후예이나 침략 한 번 안당하고 인구는 1억 4천만명으로 내수시장도 탄탄하다. 수출안하고 내수시장만으로도 그 공장을 유지할 수 있으니 복많은 나라다. 그러고도 외국노동자수입은 막는다. 대학진학률이 한국 89%, 일본 63%일 정도로 대학에 굳이 안가도 먹고사는 데 지장없고 실용주의적 정신이 강해 기술과 장인을 우대한다. 즉, 사무라이든 누구든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대접하는 사회인 것이다. 우리처럼 사농공상이 아직 살아있고 결혼할 때에도 집안가리는 걸 보면 일본이 얄밉기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개화기때 쓰던 말이 있다. 동도서기(東道西器)라고 하는 데 정신은 동양을, 기술은 서양을 따른다는 뜻이 된다.  일본은 서양에서 문물을 제일 먼저 들여 와 탈아입구(脫亞入歐)에 성공했으나 정신도 서양에서 좋은 것은 제일 먼저 들여와 외모만 동양인이지 사고방식도 서구적인 게 많다. 질서와 안전의식이 그것이고 서구를 배워와도 자기들에게 압박이 되지 않을 상대인 화란(네덜란드)을 골라 기술이전료 지불없이 서구의 모든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한일합방.만주사변.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다. 어떻게 보면 놀랄 만한 능력이며 서구를 배우기 위한 공무원.전문가들 해외교육에 당시 일본 GNP의 2%를 쏟아 부었다니 일본 제국주의가 그냥 이뤄진 건 아니라 생각된다.  화란을 만났기에 커피도 연한 아메리칸 커피가 아닌 유럽식 에스프레소 커피이며 발음도 커피가 아니라 코히이고 Beer가 아닌 비루가 된 것이라 한다.

 

  

<그림9> 벳부 언덕에서 본 IPU대학과 벳부온천들      <그림10> 벳부 언덕에 있는 오이타현 관광지도 

 

어느 덧 우리가 탄 버스는 벳부온천입구인 벳부언덕 뷰포인트에 와 섰다. 흐린 날씨이지만 아랫녁을 굽어 보니 대학교건물과 해변산록을 중심으로 마치 전쟁중에 폭격맞은 건물위로 포연이 피어오르듯 온천증기가 도시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