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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외 전쟁활동과 읍성.수도의 위치 고구려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족속중의 하나가 모용선비족이다. 북경아래 발해만에 고조선 고죽국에 전연과 후연이 되고 두로공 신도비에 고조선의 후예라고 기록해 고구려와 형제간이 되기도 하고 모용외는 스스로 추모왕의 후예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모용외의 전쟁기록과 읍성.수도의 위치(부록9. 참조)를 연구해 보면 민족사학중에서도 요동군 중심학파와 하북.산서성 중심학파가 나뉘는 걸 보게 되는 데 주요 근거가 모용선비족의 전쟁기록과 창려군 도하, 극성 위치때문인 걸 알 수 있다. 모용외가 AD285년에 대인으로 재위에 오른 후 AD289년에 고구려 등과 싸우기 위해 요동군 동부쪽에 있다가 창려군 도하 청산으로 간 것은 당시 힘이 센 단과 우문에 밀리고 서진과 싸우는 게 힘든 것을 알았기에 항복하고 선비도독이 된 것이다.. 2026. 10. 3.
Ⅶ-3. Territorial map of Goguryeo under King Taejo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 Goguryeo’s maximum territory extended west to include the 10 fortresses of Yoseo (Liaoxi), reaching as far as Jamong and Beijing. To the north, excluding Buyeo, the territory was bordered by the Mudan River (Mudanjiang 牧丹江). To the east, Goguryeo subjugated Okjeo and reorganized it into Haeseo-gun. According to the Saryak (Compendium of History), in the 26th yea.. 2026. 9. 30.
Ⅶ-1&2. Historical Maps of Goguryeo by Era(until King Chumo) Ⅶ. Historical Maps of Goguryeo by Era 1. Historical maps of China of the Later Han Dynasty and the territory of Youzhou of Cao Wei The claim that the Great Wall of China extended north of the Cheongcheon River during the Qin dynasty—along with the assertion that the northern territory of the Korean Peninsula belonged to China through the Han, Cao Wei, and Jin periods—culminated in the Northea.. 2026. 9. 30.
7-8. 수당전쟁 당시 고구려 강역도 수.당과 고구려간 전쟁은 그래도 명확한 편이다. 하북성이나 요서군에서의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구려의 방어선인 천리장성과 삼국사기> 및 수.당이 기록한 전쟁기록들을 보면, 아래 그림들이 대체로 맞다고 보여진다. 민족사학중에서도 하북성과 요서군 기록들을 주장하는 데, 이는 모용외의 요서군 도하현과 창려군 도하현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략>의 서천왕 5년(AD274) 기록과 같이 AD276년 서진(西晉)의 평주(平州) 교치에 따른 것으로서 고구려와 모용외간 봉상왕때 고노자와의 국북신성 전투 및 요동의 전투기록을 살펴보면 전선(戰線)이 대릉하(大陵河)를 넘어서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북쪽 경계는 장수왕때를 보더라도 더 넓었으리라 생각된다. 도표 7-8-1> 고수1차전쟁시(AD598).. 2026. 9. 23.
7-7.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때의 최대강역도 광개토대왕때의 서진최대강역은 용성(朝陽)을 공격하긴 하였으나 점령하고 통치하진 못하였다. 숙거(宿車, 北鎭)와 점선, 평곽 등을 통치한 것으로 사료되며 대릉하를 경계로 볼 수 있겠다. 장수왕 21년(AD434) 4월, 풍홍이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더니 상은 “북위의 탁발도가 내게는 그대의 땅을 침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서 몰래 자신은 침식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쥐새끼나 무엇이 다르겠소. 요수(遼隧)의 서쪽은 짐이 알아야 할 바 아니나, 만약 용성을 침입하면 짐이 토벌할 것이오”라 일렀다. 즉, 대릉하 동쪽은 광개토대왕이후 고구려땅이란 말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고구려는 왕이 직접통치하는 국내(수도 인근 포함)와 자몽땅과 같이 거수국왕들이 다스리고 고구려성채가 있는 간접통치구역, 그리고 실위나 물길과 .. 2026. 9. 23.
7-6. 고국천왕과 산상왕 당시 고구려 강역도 고국천왕 당시에는 태조왕 이후 그렇게 빼앗기지는 않았으며, 공손도가 고국천왕 15년(AD193) 2월, 부산(富山)의 즉홀백(則忽白) 등이 최체와 개마를 침략하였을 때 공손도가 싸움을 돕겠다고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고 자체 무력으로 적을 치자 즉홀백 등은 막북으로 도망갔던 의 기록이 있다. 이에 비해 앞의 절에서 보듯, 산상왕은 AD197년 재위 원년에 갖고 있던 고구려 서부 지역(자몽, 서안평, 평곽, 둔유와 최체, 퉁랴오, 장령, 북하성, 개마 등)을 모조리 공손도에 빼앗기고 만다. 공손찬의 근거지(주근거지는 계薊, 북경인근)였던 요동속국은 후한서 군국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요동속국은 전한 요서군 속현 셋(古屬遼西: 창료, 빈도, 도하)과 요동군 속현 셋(古屬遼東: 무려, 험독, 방)을 떼어 만.. 2026.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