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고국천왕과 산상왕 당시 고구려 강역도
고국천왕 당시에는 태조왕 이후 그렇게 빼앗기지는 않았으며, 공손도가 고국천왕 15년(AD193) 2월, 부산(富山)의 즉홀백(則忽白) 등이 최체와 개마를 침략하였을 때 공손도가 싸움을 돕겠다고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고 자체 무력으로 적을 치자 즉홀백 등은 막북으로 도망갔던 의 기록이 있다. 이에 비해 앞의 절에서 보듯, 산상왕은 AD197년 재위 원년에 갖고 있던 고구려 서부 지역(자몽, 서안평, 평곽, 둔유와 최체, 퉁랴오, 장령, 북하성, 개마 등)을 모조리 공손도에 빼앗기고 만다. 공손찬의 근거지(주근거지는 계薊, 북경인근)였던 요동속국은 후한서 군국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요동속국은 전한 요서군 속현 셋(古屬遼西: 창료, 빈도, 도하)과 요동군 속현 셋(古屬遼東: 무려, 험독, 방)을 떼어 만..
2026.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