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계림 기행문
말로만 듣던 중국 남부풍치지구인 장가계/계림을 다녀오기로 했다. 너무 더워지기 전인 5월초쯤 다녀와야 하는 데 6월이라도 다녀와야 하게 생겼다. 집사람도 교회에서 구역장등 교회식구들과 함께 6월에 일본 아오모리여행을 다녀오면 어떻겠느냔다.
기왕 간다면 경관좋은 곳을 골라 가는 게 좋겠지. 상품을 골라보니 17일자는 없고 천상 18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사에 물어보니 8명이 된다 하고 가격은 1인당 59만원. 비자피, 가이드피가 빠져있다는 데 계림 이 들어있고 그래도 괜찮은 가격으로 좀 더 가외로 비용이 들어갈 게 있어도 낫겠지 하고 그걸 선택했다.
6월 18일(금) 14시반 남방항공편으로 정해진 뒤 이번 여행에는 밑반찬등 아무 준비없이 떠나기로 했다. '어차피 한두번 가는 여행이 아닌 바에야 간단한 옷가지만 갖고 가면 되겠지. 지난 번 여행때 보니 서로 준 비해 오는 게 너무 많아 현지음식냄새도 제대로 못맡고 했으니 공항에서 고추장튜브정도나 사가리라' 맘먹고 간단히 여장을 꾸리기로 했다.
한 가지 큰 실수를 한 게 있다. 미국에 가 있는 정혜가 디지털카메라를 가져가 버려 정한이가 새로 산 게 있는 데 메모리가 부족해 256M를 하나 더 사기로 해 두었다. 비디오캠을 가져가라는 걸 여행기에 쓸 수도 없고 두 개를 가져갈 이유도 없어 그렇게 했는 데, 결과적으로는 사진거리를 망쳤다.
이걸 분당에서 미리 사두었으면 그만인 것을 공항면세점에서 산다는 게 시간부족으로 못샀고 중국현지 에서는 광조우등 큰도시는 물론 어디가 봐도 물어봐야 헛일이었다. 결국 가져간 디지털카메라도 나비찍는 다며 아내가 동영상으로 찍어놔 그만 끝장났고 일회용카메라를 사서 천자산등을 찍어 놓았는 데, 내 실수로 계림 복파산 마원장군공원 앞에서 잃어 버려 낭패를 보았다.
중국남방항공을 타고 가보니 불편한 게 한국말이 영 안나온다는 점이다. 점심때 김치쪽이라도 나오는 데 그게 전부다. 일행중에서 누군가 말하길 장가계 관광객중 60%이상이 한국사람이라는 데, 일본에서 출발 했다면 이럴까 싶다. 시작된 지도 오래되고 중국에 돈벌어주는 일인데 한국에 대해 오만하지 않다면 어찌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에서는 작년 중국화교들에 대해 교육환경이 맘에 안든다고 화교들이 줄어들어 뉴질랜드 문교부 장관이 중국 북경에 가서 사과를 하고 왔다는 데, 우리도 여행을 중단한다든 지 스트라이크를 보여줘야 서비스를 고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4시간 걸려 광조우공항에 도착해 가이드아가씨 두 명에게 안내받으며 인근 백련호텔 식당으로 옮겨 현지식 저녁을 먹었다. 생선도 나오고 그럭저럭 한끼를 때운 후 장가계로 가기 위한 국내선 공항으로 다시 출발했다. 이 곳에는 과일도 풍부한 데, 중국집가면 요리를 다 먹고나면 주는 과일이 있다. 속이 하얗고 맛은 코코넛 속처럼 되어 달고 시원한데 일행중 인사동에서 초대전 갤러리를 하시는 송선생님 댁에서 1Kg정도 박스로 사서 같이 맛보았다. 국내 올 때 좀 살까 했더니 과일은 안된다 해서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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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기다리다 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노트북을 안고 문서작업을 하고 있어 등너머로 들여다 보았다. 중국글자는 소리나는 걸 영어로 친다. 그러면 숫자가 보이고 이어 같은 음가를 갖는 한문단어들이 여러 개 나타나 이 중 하나를 골르게 되고 문장을 형성한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고구려가 자기네 지방정권 이라고 하는 지, 한국에 좀 와서 우리 학생들이 SMS 문자메세지 때리는 걸 좀 봤으면 싶었다.
말이 났으니, 고구려가 조공을 하고 벼슬을 받았다고 지방정권이라면 백제는 왜 한국고대국가라고 하는 지 모순이라고 외국에서 지적하는 2004.7.8일자 중앙일보 기사생각이 난다. 앞으로는 외국학자들을 많이 이용 하는 게 좋을 듯 하다. 현재 자기네 영토에 있다 해서 역사도 자기네 거라는 중국이 대국스럽지 못하다. 역사 가 한국거면 어떤가. 땅을 달라는 것도 아닌 데….
장가계공항에서 내려 밤길에 장가계시내에 있는 난원산장이란 곳까지 산길을 구비구비돌며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미국 그랜드캐년의 플래그스탶을 밤길에 지나다 보면 낮에는 장관인 지층 절벽들이 어스름 달빛에는 험악하게 덥칠 것 같은 기세로 달리는 버스옆으로 꺼멓게 다가서 온다.
얼마큼인지 장가계 가는 길에 만주연길출신 현지가이드인 이정일씨가 여러가지 이 곳에 관한 역사,민족, 풍습, 지형 등에 관한 여러가지 사전지식을 몸은 지쳤으나 초행길에 귀는 종긋한 우리 일행들에게 간략 간략히 알려 준다. 숙소가 있는 곳은 무릉구이며, 장가계풍경구에 돈내고 들어가는 입구가 여기에 있고 옛날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관우.장비의 무릉도원 결의가 있었던 곳이 이 곳이라 전해 준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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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은 눈으로 다 넣어야 하니 그렇고, 서안은 진시황릉을 비롯해 귀로 들을 게 많으니까 귀관광이라 한단다. 그러면 장가계는 무얼까? 장가계는 와와관광이라 한단다. 다니는 곳마다 탄성소리가 절로 나와 그렇다는 거다. 참, 산 꼭대기 보봉호수에 가면 이곳명물인 와와고기가 있다고 들었다.
밤에 물가에 나와 우는 소리가 꼭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같다 해서 중국발음나는 대로 와와고기라 한다니 와와관광에 한 가지 이유가 더해지는 것 같다. 황룡동굴 들어가면서 장삿꾼들이 가게마다 잡아다 놓고 돈내면 보여주는 데, 한국돈 1000원이다. 발이 4개이고 발가락은 5쪽이다.
피부로 보조호흡을 한다 하며 개구리, 작은 새도 잡아먹는다니 옛날 진화론과 연관되는 재미있는 물고기인 것 같다. 장가계는 호남성 서북부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공원으로 1982년에 지정되었다 한다. 강택민주석이 와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개발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많이 다니기 편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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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내에서는 산수 제1경이다. 계림에 가보았더니 그곳에 있던 조선족 가이드가 잘 될 땐 1,000명 정도로 북적댔다는 데, 지금은 한 100~200명 정도고 다 장가계로 떠나 사업한다 하니 관광무게 중심이 바뀐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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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돈이 이 곳에서는 대접받는다. 어디서든 안받는 데가 없고 편하기 그지 없다. 다만 우리 돈 가치가 떨어져 IMF나던 해에는 1위안에 100원 정도였는 데, 지금은 140원이 좀 넘는 것 같아 중국성장을 실감 한다. 백룡엘리베이터에서 원가계가는 길에 버스타고 가려는 데, 1만원주면 11000원 준다 한다. 한국에서 만원짜리를 많이 가져와 바꾸면 천원짜리가 그냥 생기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헌데, 계림관광시 관암동굴이 유명한 데, 앞부분에 둘씩 타고 속도를 내고 갈 수 있는 모노레일이 있어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행중 어선생님이란 분이 계셨는 데, 한 중국남자가 하두 졸라서 만원을 주었더니 천원짜리가 9장밖에 안돼 소리치자 동전으로 천원을 더 줘 모두들 분해 했다. 어쨌든 한국돈 가지면 어디 서든 쓰이니 편리하긴 하나 장사꾼 아줌마나 돈달라는 애들이 "아저씨, 천원"하고 조르는 데는 지치고 피곤 하게 된다. 장가계의 어원을 따져보니 이름 그대로 이곳에는 장씨들이 많다고 한다. 한고조 유방이 어지러웠던 진나라 시대를 마감하고 초 항우와 패권을 겨뤄 한나라로 통일을 이루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이제는 용도가 줄어 들었으나 권력을 가진 조정의 유능한 신하들을 제거할 기미를 보인다. 이에 유방이 '나의 장자방'이라던 지략가 장량도 대장군 한신에게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전해 주고 이곳 으로 숨어 지냈다는 데, 수요서문에서 금편계곡 가다보면 장량묘라는 팻말을 따라 산림욕을 하는 곳이 있다. 암만 가도 장량묘는 없고 돌아올 때 보니 산꼭대기 바위가 사람얼굴같기도 하고 관같기도 한 데 보조가이드가 그곳이 장량묘라는 싱거운 얘기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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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다민족국가이다. 장가계 인근에는 토가족(土家族), 모로족, 하이족등이 있다는 데, 토가족 여자들은 잘 운다고 한다. 그래야 시집을 잘 간다고 하고 모계사회 전통이 있어 1처5부제 혼인관습이 있다 한다. 이 곳을 여행하다 보면 지붕이 이상한 느낌을 준다. 지붕위에 기와가 너무 작은 게 인상적인데, 만두기와라 부를 만 하다. 무릉원이라는 곳은 장가계 들어가는 입구를 말한다.
숙소인 난원산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난원산장도 그렇지만 시내 어디든지 장가계 산세를 느낄 수 있다. 남쪽으로 생각되는 데, 그 곳에는 천문산(天門山)이 있고 그 산 꼭대기 쪽에 큰 구멍이 하나 뚫려 있어 그렇게 부른다 한다. 얼마나 구멍이 큰 지 몇 년전에 에어쇼가 기획되었는 데, 그 곳으로 날렵한 비행기가 지나가는 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가히 절경으로 둘러쌓인 동양화 산수화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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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원입구에서 장가계 각지로 가는 버스를 탄다. 입장하는 데 지문을 스캔해 주게 되어 있다. 가이드가 스마트카드를 나중에 주는 데 이걸로 갈 데 까지 이틀간 드나들었다. 중국이 이런 데 까지 스마트카드를 쓰고 요즘 신문에 나오는 IP방식의 지상파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시범서비스를 몰래 준비했다가 하는 걸 보면 그 저력이 두렵다. 1997년 10월에 북경과 용경협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오후 3시 지나 명13릉가는 길에 우정(友情)이라고 외국인에게 토산품도 팔고 식당도 하는 곳에서 손님이 밥먹고 있는 데에도 종업원들이 한 쪽에 모여 자아 비판을 하는 걸 보고 중국은 아직 멀었다 했는 데 광조우나 현지 도시풍경을 보면 많이 발전했슴을 느낀다.
산을 구비구비 돌아 한참을 가다 보면 사람이 댐옆에 손으로 뚫은 바윗굴도로를 지나게 되고 댐에 저장된 물빛깔에 놀란다. 색깔이 비취색이라 물어보니 산속의 미네랄이 많이 흘러 들어서 그렇다 한다. 우리는 먼저 천자산을 가도록 버스를 탔으나 막상 그곳에 도착해 보니 관광객들로 케이블카를 탈 수가 없다. 가이드가 얼른 차를 돌려 서요수문에 있는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원가계로 가자고 한다. 참고로 관광차 앞에는 좌우를 보는 백미러가 있는 데 마치 토끼귀같이 생겨 기이한 감을 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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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에는 노래방 시설이 되어 있어 중국인이 절반이나 앉아 있는 데에도 한국노래를 틀어 준다. 주현미의 '또 만났네', '잠깐만', 칠갑산 등 여러 곡이 나오는 데 이 곳까지 한국노래가 나오는 게 신기하기도 하도 마음편하기도 하였다.
백룡엘리베이터는 전체 높이가 362미터라는 데 실제 사진에 나오는 엘리베이터 높이는 172m정도로 하늘 에 달려있는 4줄짜리 엘리베이터이고 실제 운행되는 건 2줄만 다니는 것 같았다. 하늘 사다리라고나 할까, 밑에서 올려다 본 백룡엘리베이터 전경은 흰 사다리 부분이 얼마 안된다. 산 속을 뚫고 엘리베이터를 설치 해서 한참 올라가야 하늘이 보이고 주변의 빼어난 경관들이 보이는 데, 고속으로 올라가서인 지 어질어질 하다. 현재는 2개의 사다리만 운행하고 있고 나머지 2대를 더 건설할 예정이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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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엘리베이터 올라가는 길도 가파르지만 입구에 다다르면 한 가지 헷갈리게 하는 게 또 하나 나온다. 멋진 흙고동색 바위병풍이 그 것인 데, 알고보니 인조바위이다. 잘 꾸며져 있긴 한 데, 내 눈엔 그저 자연 스러운 게 제일 좋으니 난 중국 공산당 입맛엔 잘 안맞는 사람인가 보다. 언젠가 중국도 돈이 많아지면 자연을 살리는 걸 제일로 우선시키겠지만 아직은 멀은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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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올라가니 한국돈 만원을 천원짜리로 바꿔주겠다는 아줌마를 물리치고 버스는 원가계까지 다다른다. 계곡위에서 만물상이나 좁은 그랜드캐년을 쳐다보는 기분인 데, 오녀전사봉 등을 돌아보고 한국사람이 하는 커피집이 나오는 데, 다녀간 한국사람 명함이 빼꼭한 커피집에서 차 한 잔 마시고 넘어가다 보니 천하제일교가 나온다. KT출신이라고 명함을 세보니 30명 넘어 보이는 데,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보니 근래 온 사람들일 게고 세월이 또 지났슴을 알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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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계에서 내려다 보면 연필같이 생긴 봉우리들이 많다. 한참가면 천하제일교가 나오는 데, 이 다리 건너 편 정자각에는 자물통들이 난간에 잠긴 채 세월에 녹슬어 채워져 있다. 자물통을 사서 채우고 열쇄를 천하 제일교 다리아래 수천길 낭떠러지로 버려야 빌은 복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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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굽어가면 천자산쪽으로 가게 된다. 하룡공원과 어필봉, 선녀헌화봉이 나오는 데 선녀헌화봉이 제일 그럴 듯 하다. 화관을 머리에 얹고 있는 선녀가 꽃다발을 들고 누군가에 바치려고 기다리고 있는 자태가 단연 사실적이다. 한 때 이 지역을 지배하던 나라 천자가 전쟁에 졌다는 비보를 접하고는 탄식하며 붓을 던진 게 봉우리로 변했다는 어필봉하며, 천자등 귀족들이 풍광을 보기에 족한 5층정도의 누각과 모택동시대 장개석쪽에서 시작했지만 농민편에서 싸워 결국은 공산당의 군벌영웅이 되었고 맛있게 마도 로스 담뱃대를 들고 애마를 옆에 세운 하룡장군상이 들어서 있는 공원등 풍광이 원가계 못지않다. 이 곳 밑을 내일 십리화랑에서는 올려다 보게 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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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정일 가이드가 버스에서 내릴 때 묘한 말을 했다. 이 곳에 유명한 곳이 하나 더 있는 데, 가라 오케가 있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 오면서 그 의미를 깨달았는 데, 화장실을 '갔다올께'에서 그 말이 나온 것이며 화장실건물이 예술적으로 잘 지어져 있슴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화문석(畵文石) 하나를 샀다. 원숭이 모습이 뚜렷하며 눈동자까지 나타나는 자연석으로 값을 깎아 5000원에 샀다. 먼저 보내놓은 일행을 부지런히 따라가며 물건을 살펴 보니 받침대를 빼놓은 게 아닌가. 돌아서 다시 챙겨 버스에 오르니 눈총이 모두 내게 꽂히는 것만 같아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다음 코스로 향하였다.
천자산에서 내려가는 것은 케이블카 수단밖에 없다. 여섯명씩 타고 산아래까지 내려가는 데 장관이다.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보고 외돌괴 봉우리에 틈틈이 나온 고주배기 소나무 분재감들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계곡물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종착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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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저녁에 식사하기 전에 족(足)마사지집에 단체로 가는 프로그램이 있어 일행은 그리로 향했다. 한 사람 당 5불로 되어 있었는 데, 태국 방콕 호텔에서 40불씩 주고 받는 것 보다 잘 한다. 보봉호에서 관광이 끝난 뒤 보봉호수입구에 있는 각종의 약품을 파는 시립센터에서도 학생들이 또 해주었는 데, 마사지 전문학교 에들 다닌다고 했다.
팁을 못받게 되어 있는 그 곳을 나와 전문가가 되어야 이런 곳에서 팁도 받으며 맘껏 능력발휘를 한다니 대단한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은 십대 여자애들이, 여자들은 남자 십대애들이 주물러 주는 데 뿅가게 시원 케 해 준다. 집사람들이 나오면서 천원짜리 한 두 장씩을 팁으로 주며 서로 고맙다고 작별인사하고 나와 식당엘 가며 아쉬운 듯 헤어졌다.
패키지여행하면 항상 따라붙는 게 쇼핑센터이다. 누에로 누비이불을 만드는 데 들러 한 개를 샀다. 진공 포장을 하니 작긴 한 데, 맞는 이불포가 없다. 그외 민물에서 나오는 민물진주목걸이 2줄짜리가 만원이라 처가 3개를 산다. 왜 사느냐고 묻자 이쁜 학원선생들에게 값싼 것 사준다 하니 말리기도 어렵다.
다음 날 십리화랑을 갔다. 밑에서 기봉들을 따라 십리를 사람들이 모노레일타고 가는 데 기암절벽과 방초 동산 계곡들이 동무하며 간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는 데 그렇게 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십리 화랑을 모노레일로 도로 와서는 인근의 장량묘로 이동해 갔다.
장량묘를 찾아야 한다고 해놓고 보조가이드한데 업무를 넘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이정일가이드 말을 따라 시냇물따라 가 본 그 계곡이 금편계곡이라는 곳인 데 중간에 정자와 물레방아 기념품점 놀이터가 있었고 그것들은 실제 금편계곡의 운치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계곡은 깊고 산책로가 소담 스러우며 맑은 계곡물은 쉬고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도록 물골소리를 들려주었고 가끔씩 징검다리가 있어 운치를 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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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보봉호로 갔는 데, 이곳 올라가는 길이 저윽이나 실망스러웠다. 시원한 계곡물이 잘 정리된 시멘트포장위로 흘러오는 게 아닌가! 세상에 자연환경을 이렇게나 무식하게 개발해 일직선화해 버린 사람 들이 누구일까. 물어보나 마나 공산당이겠지마는 해도 너무했다. 그래도 국민들은 모르는 것일까. 서구 같으며는 벌써 여러 사람 목날라갈 짓인데도 여긴 태평인 것 같다.
체육대학을 나오고 농구생활을 하신 배선생께서 걷지못할 만큼 통증을 호소하시더니 안되겠든 지 가마꾼을 불러 용상에 앉으셨다. 계면쩍은 얼굴하며 스타일이 말이 아니다고 미안해 한다. 선배인 배선생이 젊고 운동했다는 사람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자꾸 핀찬이다. 보봉호꼭대기까지 약 1km이상 산길을 올라가는 데 원숭이도 나오고 험하기 그지없다. 가마꾼이 가이드 안보는 데서 팁을 달라고 하나 갖고 있는 팁이 없어 그냥 보내자 툴툴대며 내려간다.
이곳 원숭이들은 사람들을 겁내는 게 아니라 무엇 얻어 먹을까 싶어 길에 내려와 사람들을 심심찮게 해 준다. 정상 고갯길을 넘으며 바위에 손을 대보라길래 대었더니 손이 사각사각 만져지는 게 있었다. 모래 였다. 원래는 바다이었는 데 융기를 했고 사암이 풍화작용을 하고 모래가 드러나 사람손이 닿으면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물가로 내려가니, 옛사람들이 쓴 보봉호 글씨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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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초입께에 배가 떠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곳 지방 노래를 불러주는 데, 단장한 처녀가 꽤나 맑은 고음에 구성지게 불러댄다. 반대편 들어오는 길 먼 쪽에는 젊은 남자 하나가 역시 들어오는 관광객들 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하는 데, 견우직녀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였다.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섬 부근에서 잡힌다는 화석고기와 비슷하게 네 다리와 발가락이 보이는 와와고기 설명이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니 호수 깊은 곳 안쪽에 두꺼비 머리같이 생긴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약간 입을 벌린 채 서 있으며 그 봉우리를 배경으로 호텔이 하나 있는 데 별이 6개인 특급이라 설명하나 별로 믿어지진 않는다. 하여간 그 호텔 손님들은 보름달에 봉우리 아랫녘에서 딜을 보며 소원을 빌면 다 이루어 진다는 얘긴데, 절경인 값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민속공연관이 있고 토가족등이 나와 민속공연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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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손님들에게 노래를 시킨다. 내게도 시켜 '선창' 한곡을 불렀다. 거의 다와 배가 들어오는 데 뱀이 수면위로 헤엄쳐 다녀 배에 탄 여자들이 놀라 한다. 와와고기나 나와 애기울음소리나 냈으면 했지만 그런 행운을 만나긴 쉽지 않으리라.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 나선모양으로 감아내려가는 급경사길이다. 겨우 다 내려가니 낙차를 이용한 소수력 발전소가 하나 있고 흔들다리와 폭포떨어지는 걸 배경삼아 사진찍고 애들이 즐겨노는 못들이 여러 개 있는 공원 같은 곳이 나왔다.
다음날 황룡동굴에 가는 데, 조그만 애들까지 붙어 '첸엔, 첸엔' 하며 붙어 떨어지지 않아 고생을 하며 굴에 들어 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다리를 지나 황룡동굴입구까지 가는 길은 가게들의 연속이다. 살 만한 물건은 없었으나 팔려고 하는 장삿군들의 목소리만 따라오는 애들과 함께 귀에 가득하다. 굴 앞쪽에 있는 가게들은 좀 낫다. 규모도 크지만, 내부에 와와고기를 갖다 놓은 곳도 있어 지나는 손님들이 기웃기웃하기도 한다
드디어 황룡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굴속에는 종류석, 석주등 아름답고 장대한 것들이 많고 지하수가 강이 되어 흐르는 등 볼 것이 많았으나 이것도 마찬가지로 개발을 많이 해 궁궐에나 있을 법한 가교가 동굴안을 지나가고 시멘트로 많은 길을 만들어 놓았으며 물길관광을 위해 굴을 일일이 뚫어 놓아 자연미를 감상 하려는 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가장 꼴불견이 명품에 칼라조명을 잡다하게 해놓은 것이다. 계림 관암동굴도 그렇던데, 이곳 사람들 감각이 뛰어난 건 지 나 같은 사람이 문제인지 그곳을 나와 한참 지나도 모르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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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저녁먹고 한 군데 더 들린다더니 보봉호로 도로 간다. 결국 약파는 '보봉호여객복무중심'이라는 시에서 설립해 운영한다는 거창한 서비스센터 명칭이 붙은 곳에 가서 어제 같은 발마사지를 무료로 받는 다며 데려간다. 결국은 약파는 곳인데, 안살 수도 없고 무좀에 좋다는 보봉욕족 1병과 통증이 있는 곳에 뱀기름이 주성분이라는 데 바르면 파스효과가 강하게 느껴지는 보봉사구정 하나를 사고 발마사지를 받고 나왔다.
처음 소개시에는 웅담도 보여주고 맛을 보게 하는 데 진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편자환등 비싼 건 구경 으로 끝난다. 괜찮긴 한데, 괜히 기분이 찝찌름한 건 우리 부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싼 게 그런 거지' 하며 또 이동을 시작한다.
중국관광 여행버스를 타보면 어느 차든 지 한 가지 겸연쩍은 게 있다. 保持淸潔이란 표어인데 버스앞쪽에 눈에 잘 띄게 붙어 있어 승차한 한국사람들은 읽어보고는 어감이 안좋아서 인지 피식 웃고 얼른 못본 척 한다. 저녁을 먹고 계림으로 이동하기 위해 장가계역으로 향한다. 미리 주문한 깨 한 말이 2만원인데, 길 에서 사는 만원짜리보다는 훨씬 가치있다 한다.
갖고 갈 게 많아져서 그렇지 국내보다 많이 싸다니 안살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짐만 늘어난다. 가이드와도 헤어지고 침대특별칸에 들어갔는 데, 한 칸에 네 명씩 잘 수 있다. 일반칸에 가보니 한칸에 8명 들어가는 것 같은 데, 잠자기가 쉽지않아 보였다. 승무원들이 합승하는 실이 따로 있었고 일반칸 잡인들은 출입이 금지될 정도로 챙겨 준다.
장가계역은 관광지에다가 커서인 지 승차한 뒤에도 출발이 늦다. 승객도 많지만 원래 정차시간을 길게 해 놓았나 보다. 짐풀어놓고도 시간이 많다. 14시간 간다는 데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는 있지만 출발하기 전 호텔에서 싸온 저녁 도시락외에는 마땅한 안주가 없어 역에서 몇 가지 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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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장가계 천문산 근방을 지나갔고 어느 새 호텔서 싸온 도시락을 먹을 시간이나 소주에 장가계역에서 사온 육포안주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가다 보니 밥이 잘 안팔린다. 어느 정도 늦어지자 잠자리에 들었 는데, 철거덩거리며 가는 기차소리에 잠이 들리 있겠는가. 하지만 새벽녁에 잠 좀 드나 했더니 승무원이 깨운다. 내릴 시간인 5시라고.
내려 어둑한 유주시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리니 계림이다. 이렇게 바꿔타는 이유가 있다. 유주 시를 지나면 열차가 머리가 바뀌고 한참을 기다리느니 버스로 갈아타고 오는 게 나아 그렇게들 한다고 한다. 잘 닦아놓은 고속도로를 지나고 시내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설 같은 풍경산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가에는 나무들이 가로수되어 서있는 데, 어디든지 같은 종류로 보였다. 가이드가 설명해 주는 데, 이 나무 들이 계수나무이고 그래서 계림이라 한다 했다. 여기 현지가이드는 이제 보조떼고 처음 해보는 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 데, 진짜 경험없는 젊은 조선족친구라 그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시간을 못맞춰 할 일없이 버스에서 반나절을 보내게 해주어 원망을 샀다.
이곳은 광서성이 아니라 광서쫭족자치주라 했다. 월남에 500km밖에 안떨어져 있다 하니, 그쪽사람들과 가까우리라 생각이 되었다. 근래에 '거란족 미스터리풀린다'라는 리포트가 중앙일보(2004.8.6)에 실렸는 데, 중국 운남성에도 '매처럼 강인했던 민족'인 거란의 후예로 다얼족이 10만 정도 살고 있고 중국내에서는 내몽고근방에 남아있는 12만명 본토자손 외에는 없으며 운남의 다얼족은 '耶律'이라고 쓴 액자를 사당에 모시고 있고 유전자로 사라져 버린 거란의 후예가 분명하다는 내용이었다.
사라진 이유는 거란이 세운 요나라를 여진의 금국이 멸망시키자 몽골과 손잡고 중국전역을 침공하는 전위 부대로서 세계 이곳저곳으로 싸우러 다니는 통에 중국내 주요민족으로 남을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된 것이라 한다. 현재 이란의 코르만지역으로 이동해 이슬람세력으로 귀화했다는 설도 있는 만큼 몽골의 선봉부대 였던 것 같다.
계림산수 갑천하 계림을 일러 '桂林山水甲天下'라 했는 데, 석회암지대에 녹아내린 산수절경이 매우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계림경치를 즐기는 데는 이강유람이 최고라 한다. 이강에 도착해서 유람선을 타기전에 모노레일에 태워 준다. 강을 따라가며 모노레일카에 부부 두사람씩 타고 속도를 조절해 가며 한 바퀴 돌고 오는 데, 우리는 운전을 잘못해 앞차를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관암동굴관람을 끝내고 돌아올 때 이 코스를 따라 오는 걸 보면 동굴쪽과 가까움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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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관광은 편안히 이강을 따라 구경하는 장점이 있어서도 그러하겠지만, 강따라 구비구비 돌며 동양화 에서나 볼 수 있는 진경산수를 맘껏 즐길 수 있으니 아주 그만이다. 밑으로 가면 양삭이 나오는 데, 그 곳 까지 계속 동양화 화폭에 나오는 산들로 이어져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암벽에 검은 먹물이 죽죽 가 있는 걸 볼 수 있는 데, 이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자연스런 바위상태라 하니 더욱 기이하게 보였다. 유람선 탈 때 물건파는 여자들과 함께 가마우지를 어깨에 맨 농부같은 사람이 그걸 빌려주고 사진찍는 값으로 돈을 받는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강에서 고기잡는 방식으로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당기는 데, 실제 사진찍는 이 가마우지들은 고기를 못잡는 퇴물들이란다.
이강을 따라 가며 여러 곳을 보다가, 더 이상 못간다며 배를 돌린다. 이 배는 일정상 여기까지라 한다. 돌아 가며 섬에 내려 도예공원이니, 민속촌같이 꾸민 곳과 농가를 보았지만 탐탁치 않다. 인사동에서 오신 송 선생댁에서 열을 낸다. 여행사에 속았다는 생각이다. 여러 연합상품이라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더 가면 닿는 양삭에 가면 시골이고 이강유람도 더욱 진경이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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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양삭으로 직접 가리라 하는 송선생댁 푸념을 뒤로 하며 우리는 얼마간 되올라가 이번에는 넓다란 동굴입구가 보이는 선착장에 내려 산기슭으로 오른다. 관암동굴이라 하는 데, 일찍부터 개발되어 유명한 곳 이라 했다. 청나라 어느 땐가 농부가 몰고 가던 소가 갑자기 떨어져 내려 발견했다 하는 데 이 곳도 문제가 지나친 개발이다. 형형색색 칼라풀 조명과 시멘트길, 보트시설 등으로 자연미가 많이 훼손되어 안타까웠다.
계림시내구경을 하고 비단을 개켜놓았다는 채첩산을 힘들게 올라가 보았다. 그 곳에서는 시내를 휘둘러 지나가는 이강을 볼 수 있었고 워낙 관광지로 유명한 지라, 당나라 송나라때 유명한 궁궐과 건물들을 단지 화하여 꾸며놓은 것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오르고 내리는 데 적당한 곳에 바람굴이 있어 관광객들을 시원 하게 해준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빛바랜 선비들 암각서화들이 바람굴 주변에 가득한 것도 이 곳의 풍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Epilog 중국여행은 1997년 10월 IMF 터지기 전에 북경과 용경협을 들른 후 두번째다. 사람들이 하도 좋다길래 찾아보았는 데, 구경할 만 하다. 중국은 아직 못사는 사람들이 많긴 하나, 처음 왔을 때보다는 무섭게 발전 하는 걸 지방도시들을 볼 때 느길 수 있었다. 점점 자본주의화해 나가는 중국.
한국에게는 이제 고구려.발해를 잊으라 하고, 옛날부터 우리말로 불렀던 중국사람 이름도 현지발음을 요구 하는 중국. 그러나 한국사람 이름과 도시는 중국식으로 부르는 중국으로 경제력을 갖춰 가 싱가포르항공도 한국말이 기내에서 서비스되지만 남방항공에서는 무시되는 현실.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암괴석을 보며 자연관광을 즐기지만, 중국과 잘만 지낼 수 없게 역사가 또 반복된다면 오늘의 우리는 후손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만감이 오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