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기행문 1부
1. 터키민족의 유래
터키민족은 원래 바이칼호 근처에서 몽골족과 함께 이웃해 살았다 한다. 그러다가, 한 지파가 신쟝성 위그 르족이 되고 투르크마니스탄과 이란을 거쳐 현재의 터키 아나스톨리아 지방까지 이르러 큰 제국을 이루었 으니, 그들이야말로 아시아에서 유럽에 뿌리를 내린 민족,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외화획득한 유일한 민족 이라 할 만 하다.
KBS출신이고 현지에서 미술고고학 1학년을 4년째 다니고 있다던 가이드 원성목씨(HP +536-464-3188, photodocu@hotmail.com)에 의하면 위그르족은 현재도 튀르크 언어를 쓰고 있다니 이들 모두가 7세기 고구려와 통교하던 돌궐의 후손이 되는 셈이다.
터키 사람들 얼굴을 보면 이스라엘과 같이 모두 유럽사람같이 생겼지만, 잘 보면 중앙아시아 원주민처럼 생긴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들이 그렇고 유럽형들은 셀축.오스만 터키제국이후 민족들이 섞여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우리와 옛적관계가 있었다는 친근감이 들어 그런 지, 이들이 한국사람이 다가가면 ‘대~한 민국’ 하면서 반갑게 대하는 것이 꼭 장삿속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참고로, 터키관련 책자에 보면 이들 이 중앙아시아에서 옮겨온 것은 극심한 가뭄때문이었다고 하며 셀죽터어키는 1050년경 세워져 13세기말 몽고군침입때까지 존재했었다고 한다.
2. 터키관광의 장점 터키는 관광의 보고라 할 만 하다. 지형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스탄불과 보스포러스 다리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스만터키의 영광을 살펴 볼 수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문화적으로 에게해를 둘러 싼 그리스문명과 고대 호머의 일리어드 서사시로 유명한 트로이(성서의 드로아)가 이곳에 있고 동로마를 비롯한 로마문명이 여기 있다.
에페스를 가 보면 로마당시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데, 그 곳에 로마건축양식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이 온전히 남아 있슴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스만터키시대의 회교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슴을 볼 수 있고 이방 종교와 싸웠던 초기 기독교의 7대 교회지역과 창세기에 유명한 아라랏산이 터키내 그대로 있어 기독교 문화 성지순례의 고장이기도 하니, 이처럼 다양한 눈요기감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이 세계 어느 곳에 또 있을까 싶다.
지역도 광활해 80만 평방Km로서 우리나라 남북한의 4배가 되니 산천경개 구경할 곳도 많다. 동쪽은 산악 지방, 중부는 건조한 분지가 많고 서부는 지중해성 기후로서 터키평균기온이 5°C높다 하니 안탈랴(바울 시대 성서의 앗달리아), 보드룸 등에 가보면 올리브나무들로 산이 꽉 차있는 걸 볼 수 있고 아열대성 기후 로 휴양지대라 할 만 하다.
성경에 보면, 앙카라를 중심으로 가운데 지역이 갈라디아, 아라랏산쪽으로 가는 중간에 갑바도기아, 갈라 디아 위로 흑해에 연한 비쟌티움(이스탄불)지역이 비두니아, 갑바도기아 위쪽이 본도, 트로이(드로아)가 있는 지역이 무시아이고 갈라디아까지가 아시아이니 당시의 아시아는 무척 작은 지역이었다. 이 밖에 다소, 안디옥이 있는 길리기아와 버가 더베가 있는 밤빌리야가 있으니 이곳이 사도행전의 주무대라 할 수 있다. 아래 지도보다 더 간명한 지도는 home.hanmir.com/~lkms34/doc/terkyjido.htm 를 참고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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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나 온 길로 보면, 이스탄불에서 갑바도기아로, 다시 타우루스산맥을 넘어 루스드라 근방의 이고니 온(콘야)으로 갔다가, 골로새를 지나 라오디게아를 거쳐, 앗달리아.버가에 닿았고, 빌라델비아.서머나.사데. 밀레도가 인근에 있는 에게해 측의 에베소 견학을 한 뒤 보드룸에서 쉬고 이스탄불관광을 한 셈이니, 사도 행전공부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또 한 가지, 터키사람에게는 그리스라는 말은 없고 꼭 유나니스탄이라고 한다. 터키가 오스만제국내내 그 리스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사군시절만큼 치욕적인 지배를 받아 온 희랍.로마문명의 주역 그리스 는 터키와 앙숙관계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폐는 터키리라를 쓰는 데, 1달라에 150만 TDL이다. 100달라 바꾸면 한참 쓰고 좋다. 특히, 농산물이 풍부하고 면직물이 싸며 품질이 좋아 부피만 아니라면 맘껏 살 만 하다. 가죽제품도 좋아 실제 이 곳 원단이 이탈리아 등으로 나가 유명상표가 붙으면 몇 배 비싸지니, 잘 고르면 관광비용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터키석은 푸른 하늘색이 영롱한 데, 금이 들어간 게 좋고 태국등에서 나오는 가짜들과는 쪼개어 보아야 진품을 안다는 데, 유명하고 지정된 곳에서 보증된 것들을 사면 큰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3. 카파도키아 첫 날은 이스탄불에 시차도 적응못한 채 한 밤중인 밤 8시 넘어 도착해 11시경에 ALL SEASON HOTEL 에 여장을 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이 곳은 이스탄불로 되돌아 와 시내관광을 하고 6번째 날 밤을 지내기 도 한 호텔인데, 시내에 있으면서도 비교적 깨끗하고 조용하였던 것 같다.
이튿날, 시차도 적응안된 상태에서 벨이 울린다. 잠에서 깬둥만둥 어제 도착한 아타튀르크공항에서 카이 세리로 가는 국내편 비행기를 탔다. 카이세리는 카파토키아에서 20km정도 떨어진 곳으로 관광객으로 바쁜 도시이지만 역사도 오랜 지역이다. 도시명이 말해주듯 casar란 뜻이 담겨있고 BC 2세기에 로마인들이 건설한 케사레움이 원명칭이다. 인구 백만이라 하니 큰 도시이다.
카파토키아는 카파토라는 말과 투르키아 합성어로 페르시아로 부터 전해진 말이라 하며 ‘말들이 아름다운 땅’ 이란 뜻이 된다 한다. 마치 한무제가 노렸던 천마(天馬)가 뛰노는 서역을 생각케 하고 당시의 말의 값 어치가 현대의 탱크만큼 귀했으리라 생각해 본다. 예로부터 명마 주산지로 유명했던 듯 하며 현재의 기후는 매우 건조하고 비가 안오는 관계로 땅은 척박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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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으나 많이 풍화되어 있어 보인다. 멀리서 보니, 마치 미국의 브라이스캐년을 보듯 하다. 이 곳은 교회들 유적이 많은 괴뢰멜공원으로 가는 중간지역인 데, 위치사하르라고 하는 새장과 같이 집구멍 이 송송난 M자형 바위요새(실제 맨꼭대기에는 터키깃발이 걸린 군대가 주둔하고 있슴)가 있고 그림 3에서 보이는 기이한 버섯바위가 ‘요정의 굴뚝’이란 명칭이 붙어있는 파샤바이다. 이 지대는 그림 4에서 보듯이 바위 안쪽이 사암이고 바깥 쪽이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수박과 같이 속을 파내기가 쉽다고 한다. 검은 버섯같이 생긴 갓과 껍데기는 화산재와 풍화작용 때문이라고 들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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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았던 흔적이 수 만호에 달하고 있어 이곳도 사람살 만한 환경은 된 듯 한 데, 특히 안에 들어가 보면 교회벽화들이 잘 그려져 있는 곳이 많아 볼 만 하다.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데, 특히 기독교 를 승인한 콘스탄틴대제와 그 어머니가 그려져 있는 벽화가 있고 성모마리아가 승천하는 그림이 있는 데 이것 때문에 그리스정교와 여신숭배의 전통이 있는 카톨릭교가 갈라서게 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고 설명 해 준다.
남자 성인중에 젖가슴이 달린 벌거숭이 그림이 있어 혹시 최초의 트랜스젠더성인이 아닌가 생각케 해 웃음 이 나왔다. 어쨌든 기독교의 고난이 자심했슴을 알 수 있는 데, 우하귀 그림은 당시 교회내부중에 부엌그림 이다. 사진이 잘 보이기 위해 이 그림을 넣었지만 다른 그림을 보면 완전히 까맣다. 공간도 넓지마는 연기가 잘 안보이도록 애쓴 부분이 뒤에 설명할 델린구유 지하도시처럼 로마군을 피해 숨는 노력이 처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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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벽화가 있는 교회성격의 굴 그림 6. 내부설명하는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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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의 교회벽화사진속에 일본군 모자 비슷하게 쓰고 있는 사람이 부산사는 김 모씨인데, 현재 직업은 없고 시간을 내어 이번 여행에 합류했다는 데, 성격이 활달해서 사람들을 곧잘 웃겼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 건 형님.누님이고, 손아래는 트고 여자든 남자든 말을 놓는 게 예사이다. 아가씨들과도 잘 지내고 주동을 쳐서 재미있게 지냈다. 날마다 주머니있을 만한 양반들을 초청해서 형님형님하며 술값을 내게도 하고 밤 시간을 심심챦게 해 주어 주변으로부터 밉상을 받는 편은 아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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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선 무얼 먹고 살았을까? 그림 3의 바위성 아래 보듯이 무슨 척박한 땅에 잘 될 건 없는 것 같아 보이 나 안즌뱅이 키의 포도나무 재배가 많이 보여 그 때도 그랬을 듯 싶다. 비료로는 비둘기 똥이 많이 쓰인 것 같다. 그림 8에 보이는 곳이 비둘기계곡인 데, 자세히는 안보이겠으나 현장에서 보면 주거혈(穴) 입구 위에 비둘기집 구멍이 4개 정도 보이고 비둘기도 날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걸 모아서 비료로 주는 데,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수도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그 중에 서도 그리스도를 믿고 평안히 살았을 주인공들을 생각해 보면 현재의 문명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물질적 축복은 별로 없었겠지만 종교적으로 귀의한 영적 생활을 했던 사람들과의 삶중에 누가 더 행복했을까 하고 자문해 보게 된다. 델린구유는 콘야쪽으로 가면서 만나는 지하도시이다. 기독교인들의 거주지로 지하 12층 까지 있다는 데, 우리는 지하 8층까지만 가 보고 더 이상은 내려가 보지 못했다. 시초에는 기독교인용으로 개발된 건 아니라 한다.
기후가 건조하고 문명의 실크로드이면서 동서양간 전쟁이 수시로 일어나다 보니 바위속만 아니라 지하로 도 파내려간 모양이다. 몇 년 전엔가 들어 갔다가 가이드 몰래 다른 길로 간 일본인 신혼부부가 아직도 발견 되지 않았다고 겁을 주어서 우리는 길이 좁아 다국적관광팀이 섞이는 교차로에서 우리 팀 서로의 뒤꽁무니 를 확인하면서 다녔다.
통풍도 잘 되고, 수확한 포도열매를 수직으로 내려보내는 통로, 그 곳에서는 담배연기가 위로 빨려 올라 가지 않아 신기했다. 위로부터의 통풍이 잘 된다고 하며 보여준다. 당시 이런 도시가 30개 정도 되었고 지하를 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니, 이들의 노력과 신앙심이 얼마나 강하였을까 생각해 본다. 월남 전쟁에서의 베트콩사람들 처럼 잘 파놓은 것 같다. 미로도 많고 돌쩌귀로 잠그면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물줄기를 끌어들여도 미어캣처럼 끄덕없이 견뎌 내었다니 기술이 대단하다. 디지털사진기는 밭데리가 약 해서 탈이다. 계속 애를 먹이는 데, 플래시를 써서 10컷정도 찍어대면 끝이다. 충전해 갖고 나온 사진기가 1시간도 안되어 다 돼서 증명사진이 없는 게 못내 유감스러웠다. 여러 곳에서 그 모양이다.
4. 상업도시 콘야(이고니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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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랴로 가는 길에 콘야를 지나게 되는 데, 이 곳이 바울이 전도하던 이고니온이다. 당시에도 상업으로 유명하던 도시인 데,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왠만큼 믿고 나머지는 세속적이게 마련이어서 사람들 모이 는 곳이면 어디든 예수와 복음을 전도하며 간난신고를 겪었을 바울을 생각케 된다.
윗 그림(그림 9번 산맥초입, 그림 10번 산맥정상)들을 보면 타우루스(Taurus)산맥을 넘어 가야 안탈랴가 나오는 데 힘들었을 초대교회 선구자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생육신하신 예수에게 화인(火印)을 맞지 아니 하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로마까지 퍼지는 게 가능하였을까 생각케 된다.
콘야에서 한 타일제작하는 집을 들르게 되었는 데, 이 곳은 이즈닉 식의 제작기법으로 유명한 집이었다. 우리 집에 걸어 둘 목적으로 콘야에서 일박한 호텔에서 본 우리나라 학춤이나 승무와 비슷한 회교춤인 매브 라나 댄스 또는 세바 댄스라 하는 그림이 들어 가 있는 예술타일 2점을 샀다.
35불씩 주고 샀는 데 집에서 볼수록 콘야지방을 생각케 해 준다. 특히, 그림에 보면 손사위가 우리나라 태극문양처럼 위아래로 벌리는 데,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여 열려 있고 왼손은 땅을 향해 펼쳐 있다. 오른손 은 하나님께로부터 뜻을 받아 왼손모양과 같이 아래로 이 땅에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한 가지, 마호멧교는 기독교.유대교와 형제지간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는 배다른 형제인 이스마일로 부터 갈라지고 하나님을 호칭할 때 이스라엘은 ‘엘’, 아랍은 ‘알라’라고 하며 모세(무사)5경이 같다. 예수를 ‘이사’라고 하며 쿠란에 예수경이 들어 있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으며 선지자 또는 사도로만 본다. 이슬 람교에도 10계명이 있다. 단지 5행5신이라 하여 처음 듣기에는 남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다시, 이 이즈닉이라고 하는 곳은 현재 BURSA지역에 있고 325년 니케아 공회가 열렸던 로마시대 니케아 로서 제 4차 십자군전쟁 때에는 이스탄불이 십자군에 점령되어 비쟌틴제국의 임시수도가 되기도 하였던 곳 이다. 이 곳 콘야에는 전날 피로를 고려해서인지 비교적 일찍 도착해 시내 대형할인마트에서 그 곳 아이스 크림인 돈드루마를 사먹고 두번째 밤 잠자리에 들었다.
이고니온까지 그리고 나머지 바울의 여행 모든 일들이 성경에 마치 예정되어 있던 일처럼 그져 펼쳐졌던 그 바울의 길을 함께 따라가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군대가기 전 대학생 때 지은 바울송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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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럽의 휴양도시 안탈랴(앗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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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일행을 태운 관광버스가 타우루스산맥을 넘어 안탈랴에 다가가자 안탈랴공항이 눈앞에 들어 온다. 이 때를 시작으로 바캉스시즌에는 피서온 사람들로 벅적벅적한다는 데, 안탈랴가 온통 유럽 벌거숭이들이라고 한다. 방값도 천정부지가 되고…
그림 11은 이블리첨탑인데 양식이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미나르로서 세로로 홈이 알록달록 파진 탑으로 유명하다. 미나르란 회교사원에 탑을 말하는 데, 하나님을 향한 첨탑형식은 창세기 바벨탑에서 부터 고딕성당, 현대 이웃교회 첨탑까지 표현이 다양하다. 중동에 가면 미나르기둥이 많을수록 고귀하고 유명한 데, 파키스탄 갔을 때 술탄을 위한 미나르가 6개까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림 12는 안탈랴 성문인데, 바로 앞이 바닷가이고 신들의 정원이라는 올림푸스산(그림 13 중앙의 설산)이 서녁으로 멀리 보여 황혼에 더욱 멋있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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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문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승전한 황제가 돌아 오면서 이곳의 호족들이 귀로에 오른 황제의 눈에 들려고 힘들게 만들어 바친 승전문이라 한다. 당시의 포장도로가 보이고 화려해 보인다. 현재는 그 후손들이 관광업 등에 종사하면서 낙천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데 그림 15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가롭게 대형 판에 서양장기인 체스를 두는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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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6,17)은 삼일째 되던 날인 5월5일에 우리 일행이 묵은 호텔인 데, 방마다 바다가 잘 보일 정도로 전경이 좋고 1급호텔로서 주변에 다니기에 편하였던 기억이 난다. 주변에도 사진을 찍어 보았는 데, 경관이 좋으니 어딜 찍어도 일품이다. 바닷가쪽이 절경이라 내려가 보고 싶지만 절벽으로 되어 있어 내려가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지중해 파란 해변과 함께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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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요한계시록 속의 라오디게아 안탈랴를 떠나 파묵깔레(목화성)로 가는 길이다. 가는 도중에 호수가 나오는 데, 이 곳 호수는 염수이다. 예전에 터키일대가 바다였는 지, 무슨 굘이라고 하는 명칭이 통상 붙어 있고 동부에 있는 반굘인가 하는 호수가 가장 크다 하고 그 곳 역시 염수이다. 그림 20에 보면 호수주변 모레가 약간 붉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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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여행을 생각하게 된 것은 여러모로 내게 영향을 미친 우승술 필링크사장님의 조언과 기행문의 도움이 컸다. 천주교를 다니시는 데, 라오디게아에 대해 요한계시록의 다음 글을 들고 있다.
“나는 네 소행을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구나! 이렇게 미지근 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내련다. 너는 부자라면서 모자람 없이 풍족하게 되었노라고 하지만 실상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음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충고한다.
부자가 되려거든 불로 정련된 금을 나한테서 사거라. 네 몸을 가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들어 내지 않으려거든 흰옷을 사거라. 바로 보려거든 네 눈에 바를 약을 사거라.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나눌 것이다. 승리하는 이를 나는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 옥좌에 앉은 것처럼 나와 함께 내 옥좌에 앉히겠다. 귀 있는 자는 영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2000년 전 라우디게아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요한 묵시록의 말씀에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옥한 땅 에서 부족함이 없고 지리적으로도 동쪽의 눈과 서쪽의 온천이 위치해 있어 차지도 덥지도 않은 것이 이들의 신앙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미지근한 이들의 신앙심을 보시고 요한 사도께서는 질책을 하신다.
그 당시 화려했던 라우디게아는 폐허로 변했고 지금 그 도시를 발굴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가이드 원성목씨는 현장의 발굴속도가 매우 느려 10%정도 밖에 안된다고 설명해 준다. 또한, 안약의 주산지 였으니 잘 사는 부자들이 많은 이유가 한 가지 더 느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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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이 동쪽 높은 산맥지역이고 서쪽의 가운데 하얀 부분이 파묵칼레이다. 라오디게아도 산 정상과 같이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데, 대부분의 지역이 잡초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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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에 보듯이 당시 번영했던 도시유적이 큰 거로는 이 것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화산재에 묻혀 버렸다. 그림 25와 같이 길옆에 보이는 꽃은 양귀비처럼 생겼는 데,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 등 어디를 가든 지 많이 볼 수 있다. 로마유적과 함께 묘한 여운을 남기는 화사한 꽃이라 히에라폴리스 유적 여기저기서 많이 보여 찍어둔 그림이 여러 장 되었다.
7. 파묵칼레: 눈송이처럼 하얀 목화의 성
파묵칼레 가는 길에 유명하다는 면제품센터에 들러 몇 가지를 샀다. 식구들 입을 내의와 ‘파시미나’라고 목에 두르는 건데 값싸고 특산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한국이외에도 독일.러시아등 각국손님들이 와서 많이 사 가지만 지금은 그래도 손님이 적은 편이라 한다. SARS때문에 그러한 데, 실제 5월 3일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 터키항공기 이코노믹 칸도 텅 비어 다들 누워서 편안히 온 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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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이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물건좋은 곳만 선별해 소개하는 것인 데, 사라고 부담주지도 않지만 무엇이 좋은 지는 잘 소개를 한다. 실제 국내 돌아와서도 잘 샀다고 생각하게 하는 게 좋은 점이다. 그림 23은 파묵칼레 전경도이고 그 위에가 히에라폴리스이다. 이 곳에 와서 실로암이나 베데스다 연못처럼 온천에 들어가 치료받고 한 기록이 많다고 전한다.
그림27. 도시주변의 고대석관묘. 검투사 것도 있다. 그림28. 한국형 원형초분도 보이는 데 무척 신기하다. | |||||||||||||||||
파묵칼레 들리기 전에 히에라폴리스를 먼저 들리자고 해서 방향을 그리로 돌렸다. 입구에 들어가는 데, 도시주변에 그렇듯이 역사적으로 차곡차곡 살다가 쌓여간 무덤군부터 나온다. 그림 28에 보면 한국형 봉분 이 나온다. 왕릉같아 보이기도 하고 유럽에 이런 무덤도 있나 눈이 의심스러워 한 컷 찍어 증거로 남겨 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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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폴리스 극장인데, 규모가 굉장히 크다. 역시 서양사람들은 제 동네에서 하던 버릇을 개의치 않고 활개 치며 다닌다. 보기에 나쁜 것도 아니고 옆의 마누라 몰래 한 컷 찍어 두었는 데, 이런 장면들이 관광지에서는 쉽게 눈에 띄며 마치 해변가에 있듯 착각하게 한다. 힐끗힐끗 보면서 대개 당황하는 측들은 동아시아 사람들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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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폴리스 극장안에서도 비키니차림 때문에 웃었다. 같이 온 일행중에 비키니아가씨들을 불러 의아해 하는 아가씨 보고 함께 사진찍자고 청하는 분이 있어 함께 찍는 폼이 웃겨 모두 쳐다보고 웃는다. 우리 부부가 앉은 자리는 실제 황제가 앉는 귀빈석이다. 주변에 많은 양귀비꽃을 한 송이 꺾어 가운데 놓고 사진을 청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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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목화성이란 말이 왜 나왔는 지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목화를 쌓아 논 성과 같이 보인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고 온천수의 온도는 35.5°C로 사람체온보다 약간 낮다. 터키에는 더운 온천에 사는 물고기 의사 들이 있다더니, 이곳에서는 올챙이들이 많다. 약효가 있으면 내 무좀이라도 나아보려고 발로 밟아보려 하지만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부모를 졸라 잡으려 해도 찬물에서 처럼 잘만 빠져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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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날 밤, 예정되어 있는 대로 주변에 있는 리치몬드호텔에서 일박하게 되었다. 지하1층에는 파묵칼레와 같이 온천이 있어 수영을 할 정도이다. 지하흙과 같이 나오는 데, 머리에 온천수를 맞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약간 뜨거움을 느끼게 되나 곧 수영도 하고 온천욕을 즐기게 된다. 호텔 후정에 정원과 함께 풀장이 있고 온천물이 차도록 되어 있다.
밤늦게 산아래면으로 가스등이 뚝뚝 떨어져 켜져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축구장이 나온다. 한밤에 축구할 일도 없고 겁나하는 마누라와 함께 돌아와 여독에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인 채 잠에 푹 빠지면 어느 새 새벽이 온다. 헌데, 이 호텔에서 식은 땀 날 만큼 잊지 못할 큰 사건이 벌어졌다.
짐을 싣고 출발하려는 데, 내 지갑이 없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베게 밑에 조심해 둔 지갑이 방을 몇 번 뒤져 봐도 없다. 너무 조심해서 였을까. 카드도 신고해야 겠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출발시간인 아침 8시를 넘겨 다른 이들에게 그만 폐를 끼치고 이젠 떠나야 겠다고 포기한 채 차에 오르려다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어 NAS항공사 가이드 김은선씨와 함께 다시 호텔방에 들어 갔다. 지갑은 침대밑 안쪽 깊숙이에 떨어져 있었다. 그 감격! 어찌 잊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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