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여행기
49수에 가보는 뉴질랜드 한 번은 가보아야 겠다고 생각하던 기회가 왔다. 지난 2003.12.17일이 그날이다. 부산하게 처와 의논하다 보니, 여행사들에게 충분한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연말연시에는 비싸다는 의례적인 말만 듣고 T여행사에 1인당 189US달러씩 주기로 하고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그곳에 C와 M 두 친구가 있기 때문에 이메일을 주고 받았으나 시간이 없어서 였을까, 일단 12.23일부터 12.27일까지 남북섬을 패키지로 관광하고 12.28일부터는 오클랜드에서 일행들과 헤어져 2004.1.2일까지 그 곳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품이 마침 눈에 띄어 3곳 중에 고르다 정한 일정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가려 하였으나 큰 애는 병역특례로, 딸아이는 패키지여행은 싫다하여 우리 부부만 떠나기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무엇이 나를 그리 바쁘게 뉴질랜드로 가게 하였을까? 실제 가보니 남섬에서는 유명하다는 퀸스타운과 밀포드사운드, 마운틴 쿡을 못본 점이 못내 아쉽지만 남섬의 크라이스트쳐치 인근 산악과 AKAROA, KAIKOURA등 절경과 북섬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오클랜드 곳곳과 로토루아 등을 들린 것은 그래도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뉴질랜드는 호주옆에 붙어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국토의 1.5배를 넘고 일본.영국과 비슷한 크기로 결코 깔볼만한 작은 섬나라가 아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아홉을 지나 쉰살로 접어든다. 일단 여태껏 생활한 모든 걸 접고 뉴질랜드 곳곳을 다니면서 이제껏 고생한 처와 함께 자연을 즐기며 미래를 생각해 볼 기회로 여기기로 하였다. 자, 이제 뉴질랜드는 내게 무엇으로 와 닿을 것인가만 생각하기로 하고 잠을 청하였으나 옛날 소풍가던 아이 때처럼 마지막 밤을 설치고 12.23일 아침을 맞았다. 뉴질랜드 지리 참고 뭍으로 드러난 건 600만년 밖에 안된 신생 섬나라이다. 태평양대륙판 경계면에 있어 매년 약 5cm정도 북아메리카 방향으로 다가간다고 한다. 호주와는 북섬끝이 호주의 타스메이니아 섬 근방에 위도를 같이 한다고 보면 되고북섬의 기후는 지리적으로 아열대라 할 정도로 야자수나무등 수림이 울창하다. 주로 해변으로 도로가 발달되어 있고 그것도 동부쪽으로 그런 것 같다. 수도는 웰링턴이고 남섬의 마주하는 픽턴항구까지 페리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하니, 연육교를 놓거나 해저터널을 뚫으면 뉴질랜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은 데 어려운 일로 보인다. 북섬사람이 웰링턴까지 차로 오면 지친다 하니 크긴 큰 나라다. 공항에서 오포에서 택시를 대절해 출발한 12.23일 12시 인천공항에 나가보니 여행사창구앞에 우리 부부 둘뿐이다. 이상해 물어 보니 연합상품이니 뉴질랜드에 도착하면 다른 팀들과 합치지 않겠는가고 말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수속을 밟아 JAL항공을 타고 나리타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나리타에서는 4시반에 도착하였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출발이 늦어 저녁 7시께나 CHRISTCHURCH로 향할 수 있었다. 12.24일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에 내려 수속을 끝내고 가이드를 찾던 우리 부부는 안내팻말이 안보여 일순간 당황하였으나 옆에 같은 입장의 한국인부부가 보여 통성명을 하고 함께 가이드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재영이네가 또 그 공항에 내려 암말않고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우리 일행은 각각 다른 여행사(T,C,N)에 의한 실제 7명이 연합된 팀이었다. 다행히 그 곳 소장은 오정대씨라고 내 대학친구의 동서가 되어 빨리 가이드를 만날 수 있게 조치해 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울로부터 연락은 있었으나 패키지상품 확정이 안된 상태로 우리가 도착해 미아가 된 것 같고 여행후 잔류하는 이런 패키지는 남는 게 없어 서울쪽과 수수료배분문제 때문에 다툼이 종종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분이 좀 나쁘긴 하지만 시작부터 그럴 순 없다. 사오십분뒤 미안해 하며 나타난 현지가이드 정신기씨의 도움을 받아 짐을 조그만 밴에 싣고, 뉴질랜드 상황과 남섬에서의 일정등에 대해 설명해 주는 가이드의 말을 귀담아 가며 공항을 빠져 나온 우리 일행을 태운 밴은 크라이스트처치 시내로 향하기 시작했다. MONA VALE을 거쳐 시내로 가며 시내로 들어가면서 모나베일이 가까우니 점심먹기 전에 들러보자며 차를 세운다. 그곳은 원래 어느 백작이 정원으로 가꾸며 갖고 있던 걸 시에 기증했다고 하는 데, 개인목욕탕까지 갖춰져 있고 우람한 아열대성나무들과 시냇물에는 오리, 뱀장어들이 많으며 특히 갖가지 장미들로 각국 여행객들이 보고 가곤 하는 장소이다. 재영이, 유림이가 예쁘고 어려 장난통에 일행간 대화를 연결해 주는 가교역할을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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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시내에 있는 한국인식당인 리도에서 하기로 하였다. 우선 어설프게 만든 된장국이지만 한식인지라 맛있게 먹었으나 일행중에서 기왕 왔으니 맛난 걸 찾아보며 현지식으로 먹자하여 저녁메뉴를 바꾸기로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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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까 궁금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교육산업과 농축산물수출 그리고 관광산업이라는 데 교육으로는 대학이 미국을 당하지 못할 테고 해서 그 점을 물어 보았더니 초등학교등 교육수요가 많고 최근에는 중국 사람들이 많이 들어 오는 데, 제대로 교육환경이 안되어 중국사람들이 못오겠다고 하여 교육부장관이 중국에 까지 가서 설명했다하니 중국의 국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아빠는 한국에 두고 엄마와 함께 온 재영이네도 2월초까지 연수받고 초등학교유학을 생각해 보고 있다니 뉴질랜드가 초중등교육도 대단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북쪽으로 PAPUNUI 대로끝 쯤에 있는 ELMS 호텔에 여장을 풀었는 데, 비교적 실내는 깨끗하였다. LYTTELTON의 돌고래 오후에는 해변 비치로 데리고 가 구멍이 숭숭 잘 뚫려 시원한 바위산을 거쳐 마치 우리나라 태안반도와 같이 생긴 AKAROA지역에서 작기로 따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헥토 돌고래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바위산은 기묘하게도 밑에 이리저리로 길이 날 정도로 침식이 심한 역암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였으며 산과도 길건너로 맡닿아 있어 풍광이 좋은 산동네 저택들은 안들어 봐도 부자들이 사는 값 비싼 집들로 생각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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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톤은 크라이스트처치로 들어오는 서울의 인천항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남극기지로 가는 길목이어서 영국의 스코트대령이 남극으로 출발한 곳이며 미국의 해군지원기지가 있던 곳이라든 지 하는 표식이 부두에 보존되어 있다. 아담한 항구도시에 달동네 형상의 산비탈에 고급주택이 많은 것이 부자동네임을 알 수 있었고 나이많은 이들이 산다고 한다. 리틀톤가는 길에는 산들이 모두 초지로 조성되어 있었는 데, 무지하게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기본산업이라 하니 잘 이해는 안가지만 아는 척하고 지나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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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고 연신 이 초지로 조성된 산자락 해변길을 따라 가는 곳곳에 방공호들이 보였는데, 2차대전때 남하하는 일본군을 막으려고 구축한 것이라 한다. 당시 병력이 1개 연대 밖에 안되었다는 데, 실제 일본군이 들어 왔으면 당할 수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뉴질랜드는 호주와 연합방어체계를 갖고 있다는 데, 현재도 군인수는 적어 거의 눈에 띄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안정된 나라이다. 한참을 나가도 안보여 가이드의 맘을 조리게 하던 HECTOR’S DOLPHIN이 피죤베이로 보이는 아카로아반도 끝에 가서 녹음된 돌핀의 음성을 틀어주고서 한참 후에야 보이기 시작했다. 유람선에는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며 마치 돌핀쇼를 보듯 불쑥불쑥 튀어 나오며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피우는 모습에 모두들 탄성을 자아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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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톤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시간이 조금 있어 오리공원에 식빵을 5불정도 사가지고 갔다. 아래 그림 11은 빵을 통째로 던져주었을 때 나타나는 오리전쟁 모습이다. 이렇게 주는 게 일상화되었는 지 이웃사람들이 식빵들을 들고 나오는 데 유림이 재영이가 우리께 모자라 이웃사람들에게서 얻은 빵조각을 뿌리며 오리, 거위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어 한다. 시내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다운타운에 나가 낮에 정해둔 이탈리안 식당에서 바닷가재, 비프스테이크와 김선생이 사는 와인을 곁들여 양식으로 먹어 보았다. 역시 서양사람 사는 데에서는 양식에 랍스터요리와 와인 한 잔이 제격이다. 시내에 나간 김에 내일 성탄절에는 쉬는 걸 대비해 남섬이 북섬보다 선물용 양털과 물건들이 싸고 좋다 하여 교포가 운영하는 선물가게에 갔다. 장로가 주인이었으나 실제 양털을 430불에 사고 보니 북섬에서는 비슷한 게 300불이었다. 130불 손해봐도 다 그게 한국사람손에 들어간 거려니 생각하기로 했으나 같은 교인이라도 너무 믿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내일은 HANMER SPRINGS에서 온천욕을 한다기에 집사람보고 수영복을 물어 보았으나 아니 가져왔다고 한다. 가이드에게 요청해 인근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에서 국내 인터넷을 할 요량으로 3NZ달러를 넣고 PC를 작동시켰으나 글자가 깨져 시작하자 마자 돈만 날려 버렸다. 한글윈도우를 셋업하여야 하나 모르면 돈내고 배워야 하는 게 해외여행이라고 체념하며 방으로 돌아와 심심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야 했다. 한 가지, 이 사람들은 성탄절 뒷날을 BOXING DAY라고 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복싱하듯이 맞붙어 있는 휴일이란 뜻이란다. 그 날은 쇼핑센터에서도 문을 열어 주민들에게 팔면서 값을 대폭 할인해 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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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머스프링스에서 어제도 그랬지만 요며칠전부터 본격적으로 날씨가 더워져 여름날씨라 한다. 그렇다고 한국여름과 같은 찜통더위는 아니고 습도가 낮아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1986년도에 미국 콜로라도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는 데, 그곳 날씨처럼 땀이 안난다. 성탄절을 맞아 크라이스트처치 시내서부터 모조리 철시한 것은 알고 갔었지만 가이드인도로 핸머스프링스에 도착해 일정에 따른 온천욕을 기대하였던 우리는 주변경관만 보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온천은 성탄절로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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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전이었지만 실망감에 배도 일찍 고픈 상태에서 부지런한 김선생이 돌아 다니다 사온 FISH & CHIPS가 일행들의 입을 사로 잡았다. 그렇게 따끈하고 맛있을 수가 없다고 해서 점심을 고려해 2인분만 추가로 샀다. 잘 튀겨져서인 지 껍질도 얇고 생선도 맛있어해 FRANCH FRIED와 함께 말마따나 전원이 요기를 하고 경관이 좋다는 카이코우라 바닷가로 가보기로 했다. KAIKOURA 실망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선 지, 가이드가 KAIKOURA로 넘어가 보자 한다. 그곳에 전복이 많아 먹을 수도 있다는 말에 칼들을 찾아 보았으나 가이드가 가진 한 자루 밖에는 없었다. 어쨌든 희망을 갖고 핸머에서 왔던 길을 돌아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바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뉴질랜드는 점점이 보이는 게 양이라더니, 대부분 평지에는 우리나라 논이듯이 양과 소들이 차지하는 목장이다. 그것도 네모나게 꼴을 뜯을 수 있게 울타리를 쳐놓아서 다 뜯으면 옆으로 이동하는 식이었고 가끔 시골길을 가다 보면 울타리 철조망을 용케 빠져나와 운전을 방해하는 놈도 눈에 띈다. 우리를 항상 유쾌하게 해 주시는 신사 김선생님은 또 저거 싣고 가자고 해 좌중을 웃게 한다. 카이코우라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 같았다. 단지 그 날이 성탄일이라 다운타운은 철시했고 터어키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하는 KEBAB가게는 문전성시이다. 원래 터키식으로 맛있는 밀전병 고기쌈이지만 먹을 게 없다 보니 김선생이 더 사온 과일등 하며 길거리에 주욱 앉으라고 해 놓고 거지처럼 먹어야 맛있다며 입담이 걸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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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은 연대 토목과를 나오셨는 데, 미국 조지아텍 유학도 하셔서 해외경험이 많고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풍부해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 바닷가 해변에는 껍질이 두꺼운 말다시마만이 무성해 들어가기도 힘들었지만 요행히 인가가 없고 한적한 곳에서 전복 예닐곱개가 모여있는 걸 발견해 가이드가 갖고있는 칼로 도려내기 시작했다. 그곳 전복은 뱃바디가 검은 검복이었는 데, 뱃바디가 노란 우리나라 것은 황복이라고 소개한다. 노란 전복은 남섬 아랫쪽의 더니든에 많다고 하며 크기도 작아 8cm이상이라야 채취가 가능하고 검복은 12cm이상이라야 안걸린다고 하는 데, 우리는 대강 큰 것들을 잘라 입에 생으로 넣고 우물거렸다. 우리나라에서는 1Kg에 7~8만원이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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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전복옆에 이상한 검고 동그란 해삼같은 징그런 물체가 있어 물어보니 이받이에 쓰이는 군수라는 해물이라 한다. 듣기도 처음이지만 온통 시커매서 얼른 원상복구해 놓고 물개자연공원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그리 멀리가지 않아 물개가 오수를 즐기듯 사람은 신경안쓰는 채 누워있고 멀리 물개섬에는 물개무리와 인근 바닷가를 유영하는 물개를 볼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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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뉴질랜드는 자연을 보호하는 노력만큼 관광수입을 크게 올리는 것 같았다. 뉴질랜드달러가 2,3년전만 해도 미국달러의 절반도 안되었으나 지금은 1:0.65정도 한다. 한국교포가 자유롭게 들어왔던 그 때 교포들 중에는 부동산에 투자해서 오른 것과 환률덕에 돈을 벌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참고로 뉴질랜드 인구가 400만이 채 안되는데, 한인수가 3만명 정도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은 셈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버글거리는 것보다는 이와 같이 좋은 환경에서 잘 산다면 우리나라는 더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는게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않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유명하다는 캔터베리 WINERY에 들렀다. 이 곳 포도주는 기후가 좋아 프랑스나 캘리포니아산 못지않다고 한다. 성탄절시즌이라 문을 닫아 포도만 구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뉴질랜드의 품질좋은 스테이크와 포도주 한 잔을 곁들인 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포도밭에 다가가 포도송이를 보니 신기하게도 이 곳 포도는 이제 초여름을 맞아 알맹이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어 계절을 거꾸로 사는 묘미를 다시 느끼며 우리 일행은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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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관광 오늘은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 북섬으로 가는 날이다. 시내관광코스가 되어 있어 박물관을 보기로 하였으나 약간 일러 옆에 붙은 식물원(BOTANY)을 들렀다. 이곳 저곳 잘 꾸민 중에 연못과 수국, 그리고 열대성 식물들에 빠져 한참 헤메다 나오니 다들 기다리고 있어 미안한 마음에 변명을 하고 얼른 일행을 따라 박물관으로 따라 붙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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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짧은 이 나라라 마치 자연사박물관을 본 듯 하여 우리는 일찍 나와서 일행들을 기다렸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미술관이 있어 들렀더니 집사람이 자꾸 사진을 찍으라 한다. 함께 못온 정혜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작품될 만한 것을 골라 이것 저것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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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한 가운데 이 도시이름의 기원이 된 대성당 광장에 가기 전에 한국말로 인터넷 가게가 있어 안내도움을 받을 겸 들렀다. 각기 헤어져 구경하다 만나기로 되어 있어 시간이 남아 인터넷요금을 물어 보았더니 NZ$ 1불이란다. 메일도 검색하고 해 보니 한국같아 편하다. 대성당안에는 고관백작들의 기념판과 모자이크등 오랜 역사가 묻어 있어 어둠침침했지만 관광객이 많아 성당에서는 장사하랴 바쁘다. 조그만 초 하나 켜는 것도 돈이고 성당안내 책자등을 파는 데, 성경에 “내 집을 장사꾼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 일찍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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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람들이 체스두는 거야 당연하겠지만은 이 곳에서도 큰 말을 쓰고 있어 작년 5월에 간 터키 하드리아누스 문에서 본 말판이 생각났다. 아마 내기바둑두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드는 데, 설마 우리나라 야바위꾼들 노는 건 아니리라 생각해 본다. 그곳 경찰이 그냥 둘 리 없기 까닭이다. 이 곳을 나와 독립문처럼 생긴 전몰기념탑을 보고 그 곳과 다리로 연결된 공원을 가보았다. 오리들 노는 곳에 예전과 같이 식빵 부스러기를 주자 모여드는 데 늘상 많은 오리와 함께 길쭉한 물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뱀장어였는 데 무지하게 큰 놈이다. 사람들이 잡질 않아 있는 대로 자라는 것 같았다. 나중에 북섬에서 친구 M군에게 들으니 그 곳 사람들은 시가 공사한 일로 석횟물이 번지는 환경오염이 생겨 장어가 죽어 뜬 적이 있었는 데, 장어가 환경정화에 유용한 동물이라며 원상복구를 요구할 정도로 환경보호에 열심이라며 작고 맛있는 한국형 민물장어 낚시가자는 말에 그렇게 답을 한다. 이나라 사람들 환경보호가 이 정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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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도서관과 바다 한가운데까지 다리를 놓은 연육교에 가 보았다. 이 곳에는 바다 한가운데 까지 다리가 놓여 있고 맨 끝에쯤 가면 낚시꾼들이 둥그렇게 릴을 놓고 어신을 기다리고 있다. 다리 중간중간에 몇 십불부터 백만불 단위까지 다리놓는 데 기부한 사람과 가족, 회사, 단체들의 명판이 도열해 있어 사람들이 지나가며 이름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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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육교가 시작하는 곳에는 도서관이 있는 데, 규모도 크고 경관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듯 했다. 밑에는 편의시설들이 들어와 잇었고 옆으로 비치 고원풀장이 있는 데, 동심은 어쩌지 못하나 보다. 유림이와 재영이가 이 곳 아이들과 함께 고래등에 올라가 이 곳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즐긴다. 이 곳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5시에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바닷물이 옥색으로 곱게 비치는 남섬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북섬으로 날아 올랐다. |
오클랜드 어느 곳에서 보니, “The City of Sails”라고 씌어 있다. 어디를 가도 바다가 보이고 돛단 보트가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인구 200만 정도가 몰려 있다 하니 한국의 수도권과 같이 인구가 밀집해 있는 셈이다. 여기에 교포수 3만중에 2.5만명 정도가 몰려 있다 하니 이 곳이 한국사람에게는 상당히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또 이 곳은 정원도시같다. 친구 C군의 집도 그렇고 단층집으로 땅을 도배해 놓은 것 같은 형상인 데, 주거지역마다 공원이 많이 있고 집집마다 나무들이 많아 밤이 되면 음습하기도 하고 새들이 많으며, 벌레도 많이 끼지만 친환경적이라 할 만 하다.
이 시기의 북섬은 비도 거의 안오고 날씨가 아주 건조해 잔디가 타들어가 누런 색깔이 된다. 습도도 낮아서 뛰어도 땀이 금방 날라갈 정도로 상쾌하다. 반대로 우기인 겨울철 5월에서 8월경에는 쌀쌀하고 음습하며 비가 많이 와 잔디가 파릇파릇하다 한다. 눈은 볼 수 없으며 야자수등 이 지방 수목들을 보면 아열대지방 아닌가 여겨진다.
남섬에서 아름다운 동해안을 따라 북상한 국내선 비행기는 1시간 반 정도 나른 뒤에 우리 일행을 오클랜드공항에 안착시켜 주었다. 다행히 공항에서는 우리가 나오자 마자 북섬 가이드가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를 크리스마스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열어 놓도록 준비된 한식 불고기집으로 안내하여 주어 북섬의 주요 관광지를 프로젝트로 소개하는 비디오를 보며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숙소는 다운타운 동남쪽 WAIPUNA ROAD에 위치한 WAIPUNA호텔(www.waipunahotel.co.nz) 이었고 뒤편에 PANMURE염호가 있어 밤에 여장을 풀고 나온 우리에게는 그림과 같은 느낌을 주는 호수이었으나 낮에 물어 보니까 호수 건너편에 공장 같은 게 많아 실망이 좀 되었다. 오클랜드는 대강 4개의 도시로 나뉜다고 하는 데, 오클랜드와 국제공항이 있고 날로 커가는 MANUKAU시티와 아름다운 하버브릿지를 건너 북쪽으로 노스쇼어 등으로 나뉘어 진다. 도로는 고속도로급인 MOTORWAY가 있고 그 이하 HIGHWAY 등이 있어 트래픽을 연결해 준다. 길게 남북으로 국토를 가르는 1번 고속도로와 시내에서 공항으로 연결되는 남서고속도로가 있어 다니기는 편한 셈이나 우측통행이 겁이나 고속도로에서 운전 한 번 못해 보고 온 게 후회가 된다.
패키지의 마지막 날인 12.27일(토) 우리 일행은 호텔을 출발하여 CONWALL PARK를 제일 먼저 찾았다. 그 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POHUTUKAWA나무였다. 주변에 유칼리투스나무도 있었지만 포후투카와나무는 이 즈음에 꽃이 피는 뉴질랜드의 국화이기도 한 데, 꽃이 마치 대형동백나무에 우리나라 부채춤의 부채술과 같은 모습으로 만발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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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콘월파크 |
그림 2-2 POHUTUKAWA나무 |
근래들어 마우이인들이 영국의 승리를 기념하는 나무를 베었다 해서 유명한 onE TREE HILL DOMAIN지역에 있는 산 정상에는 승리를 기념하는 오벨리스크의 금색도금첨탑이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오클랜드는 콘월의 상사이름인데, 그를 존경해 기념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이 곳에서 나와 다운타운쪽으로 더 들어가면 MOUNT EDEN이 나오고 더 가면 빅토리아 마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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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MOUNT EDEN 그림 2-4 빅토리아 마운틴
마운트에덴 근방에 오클랜드대학이 있다. 시내중심가에 있고 무슨 기념공원
같이 시설물이 많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쉬며 공부하기에 좋다. 이 학교가
세계 65위일 정도로 법대등이 세다 하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공부하고 난
뒤 다른 대학생들과 같이 미국,영국,호주 등으로 나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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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5 오클랜드대학 |
그림 2-6 대학내 공원 |
오클랜드대학을 떠나 에덴동산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힐 정상에서 남동쪽을 보면 랑기토토섬이 보이는 데, 이 섬은 생성된 지 350년 밖에 안된 아기섬이다. 아직 사람이 살지 않고 있으며 그렇게 정부에서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섬은 나중에 MISSION BAY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었는 데 오클랜드 시민들에게는 어디서든지 보여 매우 친근한 섬으로 생각되지 않겠는가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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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7 에덴공원에서 본 신생섬 |
그림 2-8 미션베이에서 본 신생섬 |
그 뒤에 본 곳이 DEVONPORT였고 이 곳의 공원 역시 POHUTUKAWA꽃이 만발하여 옛항구를 중심으로 주변에 이국정취가 그득하였다. 옛날 최초의 항구였으며 본국과의 교류가 잦은 역사적인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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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9 데본포트 공원과 꽃나무 |
그림 2-10 여행의 세 핵심 마나님 |
마지막으로 오클랜드 도메인이라는 자연사와 역사등이 한꺼번에 정리되어 있는 뮤지엄을 관람하였다. 근처에 식물원이 있어 이 곳을 먼저 보고 우리는 곧 오클랜드 도메인에 입장하여 마우이의 역사와 주거문화, 제임스 쿡선장의 상륙과 초기 이주민들의 생활상, 세상에서 제일 튼튼하고 벌레가 먹지않으며 재성하여 그대로 쓴다는 KAURI나무 등을 관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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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1 마오리족의 공회소 |
그림 2-12 박물관옆 식물원 |
저녁에 불고기를 잘 하는 언덕길 한식집엘 들렀는 데, 마침 날씨도 맑았고 이 집 창밖으로 등나무꽃 같은 꽃이 핀 나무가 보기 좋았다. 어디든 꽃이고 공기가 깨끗해 시내에 주차한 자동차 유리라도 손가락으로 문질러 먼지가 안묻을 정도라니 맑고 깨끗한 환경에 그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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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3 아름다운 포후투카와 꽃 |
그림 2- 14 식당창가 보랏빛 꽃나무 |
호텔로 돌아와 밤 10시쯤되어 원영이 내외가 우리 숙소에 들렀다. 오랜 시간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내일을 기약하며 서울에서 준비해 온 소주팩 박스와 고추장, 청국장, 구운 김들을 들려 보내고 우리 내외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개별 스케쥴을 꾸려 보며 잠을 청하였다.
12.28일 일요일 오전 10시경, 원영이가 우리를 픽업하러 와이푸나호텔로 벤을 몰고 왔다. 우리는 일행과 작별인사를 마친 뒤, 뉴마켓의 REMUERA지역에 있는 원영네 집으로 짐을 옮겼다. 원영이는 지난 11월경 세례를 받았다 한다. 나와 함께 고교시절에 학습을 받은 지 옛날인데, 이제 세례라니 뜻밖이지만 지금이라도 그전의 교회생활에 대한 결실을 맺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 없다. 이 날이 주일이라 우리는 원영이네 벤으로 그 집 정인.정안이와 함께 뉴마켓에 있는 갈보리교회에 예배보러 갔다.
교회는 KAURI나무로 지어 튼튼하기 그지없고 현지 키위외에 마우리들이 별도로 예배를 보고 있고 한인들이 또 빌려 사용하고 있으니, 이런 식의 교회운용이 많은 것 같다. 참고로 이 곳 한인교회는 80여 개라 하는 데, 비공식까지 하면 100개쯤 된다 하니 교회역할이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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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5 갈보리교회에서 |
그림 2-16 김성국목사님,원영내외 |
목사님은 신부처럼 목에 칼라를 하고 예배를 인도하셨는 데, 그 날 예배에서 2004년의 목표를 밝히시며 ‘바보 같은 교회가 되자’로 말씀하셔서 의외였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준다는 성경속의 말씀을 풀며 남을 돕고 살며 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세속적이지 말자는 뜻인데, 깊은 신앙이 느껴지며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다. 오후에는 미션베이로 해서 원영이네가 처음 정착했다는 곳까지 가보았는 데, 그 곳에서 조금 더가면 누드촌이 나온다. 날씨는 맑았으나 약간 선선했는 지 운없게도 나체로 걷는 아가씨는 하나도 안보여 그냥 우리끼리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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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7 누드촌에서 허탕치는 사람들 |
그림 2- 18 누드촌 근방 |
이날 저녁은 낮에 원영이 가게를 거쳐 장을 본 뒤라 푸짐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이국하늘 아래에서 가져온 소주와 함께 하는 자리라 둘이 5병정도 마셔 대취했다. 여러 가지 얘길하다 밤늦게 아랫방으로 내려와 잠을 잤으나 잠자리가 바뀌어서인 지 새벽에 잠이 깨 우리 부부는 동네산책을 하고 들어 왔는 데도 원영이네는 아직 한밤중이다. 오랜만에 쉬는 시즌이라 잠이 부족한 모양인 데 무조건 현관을 두드려 들어가 잠깐 더 눈을 붙여 보았다.
12.29일, 월요일인 오늘은 날이 안좋다. 계속 비도 오고 해서 인터넷에 들어가 날씨를 체크해 보니, 흐리고 비가 온다고만 되어 있지 강우량이 얼마이고 오후에는 비올 확률이 어느 정도라고 알려주는 우리나라 KWEATHER생각만 했다가 실망하고 일단 약속된 스케쥴에 따라 동남해안쪽에 위치한 FORMOSA 골프클럽으로 갔다.
비가 너무 와 취소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처가 머리를 얹는 날이고 귀하게 마련한 자리라 그러기도 힘들어 일단 라운딩을 시작하였다. 수중전이었으나 아내는 첫홀부터 7번채로 잘 치기 시작했다. 허나 곧 처음 나가면 으레 그렇듯이 잘 안맞고 헤매기 시작했다. 비도 계속오고 해서 우리는 9홀만 치기로 하고 RAIN CHECK을 받아 게임을 끝냈다.
김선생댁이 내일 다시 와서 남은 게임을 하기로 하고 우리는 마종국 군을 중간에 만나 저녁을 먹고 노스쇼어에 있는 그 친구 집으로 갔다.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는 데, 이 친구는 그 곳에서 인터넷서비스회사로는 엑스트라 다음인 월드넷에 근무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되고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근방의 대학동문들 소식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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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9 마종국네 부부 |
그림 2-20 마종국네 거실에서 |
12.30일 이 날은 ROTORUA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원영이네가 쉴 수 있도록 북섬 한인여행사가 운행하는 코스를 따라 다녀 오도록 연락을 취해 보았으나 갑작스러이 취하는 거라 연결이 안되었다. 할 수 없이 원영군의 손을 빌어야 했다.
온천장까지는 약 2시간가량 걸리는 곳이었는 데, 로토루아 초입에 ACRODOME이라고 양쇼를 하는 곳이 있었다. 양치기 건장한 청년이 나와 진행을 하였는 데, 잘 깎으려면 팔뚝힘이 세어야 하나 보다. 잠깐 설명을 들으니 최고 기술좋은 사람의 경우 마리당 26초에 깎은 기록도 있다고 한다. 원래 양털은 거멓고 기름이 끼어 순양모 양탄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나 여러 공정을 거쳐 그리 생산되는 데, 이 곳 양털제품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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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1 양 종류를 세며… |
그림 2-22 털 다 깎은 양 |
이 곳에 온 관광객들은 한국,대만,중국,일본,태국,스위스,독일등에서 온 사람들이었으나 단연코 한국사람들이 많았고 양쇼진행자는 능숙하게 각국말로 인사를 해준다. 이 곳을 나와 로토루아 시내로 들어갔는 데, 도시전체가 유황온천 특유의 냄새로 가득하다. 온천장 근처에 노천온천이 있어 가까이 갔더니 흰 증기로 덮여있고 가끔 바람이 불어 속살을 드러내면 그 물결은 옥색 깊은 우물임을 보여준다. 실제 온도가 80 °C 이상이라 들어갈 수 없도록 펜스가 쳐져 있다. 일반온천장에 들어가 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와 있고 정원 바깥쪽으로 원탕인 듯 한 곳이 보였는 데, 5~11월에만 오픈한다고 한다. 전에 한국인 아이가 들어가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고 하는 데, 탕이 뜨거워 몸을 담그면 아랫도리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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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3 로토루아호수와 온천수 |
그림 2-24 일반온천장 모습 |
밖에 나오면 로토루아호수가 도시를 에워싸듯이 있다. 우리나라에 ‘비바람이 치던 바다’란 노래가 있는 데, 그 노래가 이 곳 노래라 한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빛도 아름답지만…’ 하는 노래가 원래 이 호수 가운데 섬에 살고 있던 처녀를 찾아 오던 총각과의 애틋한 사연을 담았던 노래라 하니 신기하다.
돌아오는 길에 27번도로를 만나 호비트마을을 가보기로 하였다. 반지의 제왕을 찍던 장소로 길안내가 있을 줄 알았으나 가는 도중 변변한 간판하나 없다. 간신히 그 곳 한인상점에 내려 물어보았으나 오늘은 일정이 끝났다 하여 아쉽지만 오클랜드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로 애써 준 원영이네 식구들과 저녁을 하기로 하여 좋은 곳으로 가자고 하였으나 일식집으로 가자고 한다. 식사하고 다운타운 퀸스스트릿 한인거리의 노래방에 들러 어릴 적 같이 부른 노래부터 뽕짝까지 원없이 함께 불렀다. 정인이와 정안이는 게임방에 있었는 데, 역시 세대차는 어쩔 수 없나 보다.
12.31일, 우리는 FORMOSA 골프클럽 정보를 뒤진 끝에 하루 라운딩, 호텔급 숙박 1일, 아침식사와 전동카트가 나오는 패키지가 NZ$ 119인 것을 알았다. 아예 그 곳에서 지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옮기기로 한 것이다. 포모사는 대만 포모사그룹이 2억달러나 들여 건설한 곳으로 평일에도 NZ$ 140정도인 데, 호텔값도 안되는 것으로 선택은 잘 되었다. 집사람과 둘이서 짐을 풀어놓자 마자 라운딩을 시작했다. 바닷가를 둘러싼 코스가 절경이라 가끔씩 사진을 찍어가며 게임을 즐겼다. 시간이 더 되었으면 며칠 더 해 봄직 했는 데 아깝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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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5 포모사 골프클럽 |
그림 2-26 절경에서 나이스 샷 |
그날 27홀을 반바지로 돌았는 데, 선탠을 했지만 벌겋게 익었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을 했는 데, 귀국해서 보니 너무 태워 다리살 껍질이 모두 벗어져 버렸다. 숙소시설도 그만이다. 음이온 안마탕까지도 준비되어 있는 데, 경관이 좋은 데다 호텔급이다. 골프를 좋아하고 오클랜드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분들에게는 아예 이 곳(www.formosa.co.nz , +64 9 536 5895)을 베이스삼도록 추천하고 싶다. 시내까지는 20~40분 걸리는 데, 차렌트도 주선해 주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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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7 필드가 보이는 식당 |
그림 2-28 호텔급 콘도미니엄 |
한 가지 더, 얘기해 둘 게 있다. 이 곳 포모사그룹의 투자는 실패쪽이라 한다. 왜냐 하면, 초기 1년 이용권(이곳에는 골프장이 많아 회원권제도가 없다.) 가격을 NZ$ 10,000으로 하였는 데 실패하였다 한다. 암만 비싸도 뉴질랜드 어디나 골프장이용이 쉽고 오클랜드도 접근성이 더 좋은 도시근방에 골프클럽의 1년 이용권이 NZ$ 1000~2000이면 좋다고 하니, 그래서 포모사클럽이 이런 패키지도 개발하고 야단인 것같다.
저녁때 마종국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1월 1일 골프치자더니 컨펌전화다. 내일 아침에 공항근처 호텔로 옮기기로 하고 아침픽업을 부탁했었는 데, 이 친구도 그 가격과 경관을 보더니 참 싸다고 한다. 진짜 좋은 곳인가 보다.
잊지못할 PIHA 그리고 공항골프클럽
정월 초하루 아침, 포모사에서 주는 아침을 대강 먹은 우리는 친구 M이 이끄는 대로 차에 몸을 맡긴 채 피하로 달렸다. 피하는 영화 ‘PIANO’를 찍은 장소로도 유명하다. 남섬에서부터 들은 이 곳 악명은 갯바위낚시 때문이었다. 이 곳에서 갯바위낚시하다 죽은 한국교포가 8명이라는 데, 파도가 워낙 거세, 낚시하다 몸이 밀려온 파도에 순식간에 휩쓸리게 되면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 나가고 익사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낚시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곳이 바위가 많고 큰 고기들이 많이 낚이기 때문이란다. 피하지역은 해변경관이 뛰어나 비싼 저택들도 많고 경승지가 많아 관광객들이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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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9 저 끝이 한인 낚시꾼들 무덤 |
그림 2- 30 검은모래 해변 |
이 날, 피하까지 가는 데, 경찰이 검문을 한다. 전날, 시내에서 새해맞이 폭죽터트리며 술마시고 음주운전에 걸린 차가 여럿 걸려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검문장소를 뒤로 하며 피하로 내려갔을 때 그 곳에는 사자처럼 생긴 바위산이 검은 모래 백사장과 함께 우리를 맞고 있었다. 1.3일에는 세계서핑대회가 이 곳에서 열릴 만큼 큰 파도가 검은 모래사장까지 몰려오고 둥그렇게 말려진 파도공간에 서퍼들이 묘하게 보드를 타고 빠져 나오려다 물결에 잠기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피하에서 점심먹을 데가 없다. 신정이라 포기하고 한 군데 가게를 연 데일리에서 FISH & CHIPS을 시켜 먹는 데, 이건 기름덩어리에다 생선도 물이다. 감자도 대뚱스럽게 썰어놔 인상을 구겼다. 자리를 털고 귀로에 올라 어디쯤에서 ‘피아노’ 영화를 찍었을까 찾아 보았으나 근방은 아닌 것 같았다. 공항근처로 자리를 옮겨 원영이가 50%나 오프되는 카드와 티켓을 이용해 그랜드 챈슬러호텔(www.grandhotelsinternational.com)에 짐을 풀었다. 원래 1인당 NZ$ 200정도 되는 곳이라 시설은 좋아 보였다. 몸이 고단한 지, 아내는 골프장에 가자는 친구의 청도 거절하고 쉬겠단다.
정초 휴일에는 골프장이 다 쉬어 그냥 치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갔더니, 공항근처에 있는 AVIATION COUNTRY CLUB(09-275-6265)은 9홀에 1인당 NZ$ 20불씩 받는다. 9홀을 돌고 와 보니, 직원들은 퇴근하고 없다. 그 뒤부터는 프리인 지라 우리는 천천히 18홀을 즐겼는 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골프광들에게는 시내에서 시간뺏길 필요없이 이 곳에 와서 1게임하고 비행기를 탄다 한다. 더 더군다나 이 곳 역시 바닷가 갯펄이 골프장까지 들어온 곳이 있어 재미가 있고 심어진 나무들로 보아 역사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러니, 포모사가 버틸 수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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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1 공항골프클럽에서 샷 |
그림 2-32 벙커등 시설도 훌륭 |
호텔로 돌아와 수고해 준 M군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나가자고 하니, 오늘같은 날 다른 데 갔다가는 대접받기는 커녕 문을 닫아 굶기 알맞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호텔식당이 괜찮아 식사를 하고 몇 가지 살 것들이 있어 공항편의점에 들러 쇼핑을 한 뒤 국내에 오면 만나자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은 당연히 오클랜드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티켓을 확인해 본 게 9시 15분이었는 데, 출국심사 대기행렬에서 본 비행기 시각은 8시 반이라고 적혀 있어 사람을 당황케 하였다. 아내가 서들지 말라고 하였으나 혹시 해서 뛰어 간 비행기 보딩출구에는 사람들이 없다. 9시 반이 맞는 것이나 왜 이런 혼동이 생긴 것인 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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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3 오클랜드 공항에서 |
그림 2-34 일본향 출구앞 일본가게 |
일본 오오사까로 가는 보딩출구 앞에는 일본물건가게가 있었는 데, 일본사람들로 북적대는 것 같았다. 비행기 좌석에 앉고 보니, 이제 진짜 집에 가서 애들을 보게 되는 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옆의 아내도 같은 생각이겠지…
일본공항, 오오사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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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5 인형든 타이거 |
그림 2-36 일본사람의 타이거분장 |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직항도 있지만 여행사에서 가격을 낮추느라 일본을 들리는 모양인 데, 시간을 많이 까먹는다. 미국가는 것과 같이 비행기시간만 13시간정도 걸리는 것 같다. 갈 때는 나리타공항을 거쳤지만 올 때는 오오사까공항이다. 공항터미날간에 레일로 연결되어 있고 트랜짓하는 사람들은 보안검색대를 다시 지나 이 곳을 거쳐가야 돼, 젊은 사람들은 몰라도 노인네나 처음 나가는 사람은 안내없이는 애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신년정초라 호랑이로 분장한 젊은 팀들이 있어 한 컷 찍어 보았다.
에필로그
마종국에게 반달이 매우 밝다고 얘기했더니 여기에서 네가 보는 반달은 위가 동그랗지만 한국에서 보는 건 반대일 거라고 해서 신기해 했다. 보는 시각 차이라고 해서 나리타공항에 transit하자마자 달을 보려 했으나 날이 흐려 보이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쳐다보았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반달은 아래로 동그란 것이 아닌가! 집도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는 북향집을 선호한다. 남향집은 습기가 차 습도제거기를 계속 돌려야 하는 게 이곳이다.
세상은 보기나름이다. 우리 삶도 어찌 보느냐에 따라 다르듯이 뉴질랜드의 친구들과 나 각각 여름 겨울을 본격적으로 맞이하듯이 각자가 처한 주위 환경에 대처하는 것도 각각 어떻게 삶의 모습을 취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아닌가 생각되는 좋은 여행이었다.
한 가지 더, 에어뉴질랜드항공을 타면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5개사 연합 얼라이언스항공사로 되어 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할 때, 에어 뉴질랜드항공은 마일리지연계가 안될 것이라고 해서 비행기티켓을 버렸는 데, 귀국하여 아시아나에 물어보니 된단다. 비싼 돈 주고 반만 마일리지처리를 해놓았다. 다행이라 여기며 분당가는 리무진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데, 버스들 주차가 엉망이다. 2차선까지 타지에 가는 버스들이 서있는 데다 타지로 가는 손님들이 먼저 타려고 줄서는 것도 없다. 아, 여기가 내가 살아갈 한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올라 집사람과 머리를 기대어 자리를 눕히며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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